한국과 온두라스 축구 사령탑이 결전을 앞두고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두 팀은 14일 오전 7시(한국시간)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스타디움에서 리우 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을 치른다. 경기를 이틀 앞둔 12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호세 루이스 핀투(64) 감독은 국내 취재진에게 “한국의 와일드카드가 누구냐”고 물었다. 말 자체로만 보면 한국에 대한 전력 분석이 전혀 돼 있지 않거나,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말을 들은 신태용(46)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다 파악해놓고 벌이는 심리전”이라고 일축했다. 그도 수위가 높은 표현으로 공세를 벌였다. “온두라스 감독의 ‘비매너’에 말리지 않겠다. 감독이 아무리 ‘비매너’라도 우리가 대응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4개국 친선대회를 언급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온두라스에 1-2로 지고 있다가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는데 핀투 감독은 “심판이 한국 편이었다”고 해 신 감독의 속을 뒤집어 놨었다.
핀투 감독은 코스타리카 대표팀을 이끌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 8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킨 베테랑 지도자다. 코스타리카는 우루과이, 이탈리아, 잉글랜드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해 탈락이 유력했지만 조 1위를 차지했고 16강에서도 그리스에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다. 한국을 향한 이번 도발도 계산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도 호락호락 당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선수시절 별명이 ‘여우’였다. 체격이 아닌 지능을 이용한 축구로 수비수들의 혼을 빼놨다. 지도자가 된 뒤에도 ‘밀당(밀고 당기기)의 고수’로 통한다.
핀투 감독의 지도자 경력이 신 감독에 비해 훨씬 길어 직접 비교는 힘들지만 두 사령탑의 스타일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신 감독은 공격 축구를 선호하는 반면 핀투 감독은 ‘선 수비 후 역습’의 신봉자다. 파이브백(중앙수비 3명에 좌우 풀백까지 수비에 가담하는 전술)으로 일단 단단히 걸어 잠근 뒤 번개 같은 역습으로 허를 찌른다. 이번 대회에서 온두라스도 브라질월드컵 당시 코스타리카와 흡사한 스타일의 축구를 한다.
신 감독은 “중남미 국가와의 경기에선 선제골을 주면 안 된다”며 “새벽잠을 안자고 경기를 보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선수들과 머리를 맞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흥미로운 점은 신태용 감독이 핀투 감독을 모실 뻔했다는 사실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참패의 책임을 지고 홍명보(47) 감독이 사퇴한 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새 사령탑으로 외국인 감독을 물색했다. 기술위는 감독 선임 작업에 시간이 걸리자 일단 신태용 감독을 대표팀 코치로 임명해놓은 뒤 적임자를 찾았는데 핀투 감독도 후보군에 있었다. 핀투 감독은 당시 여러 경로를 통해 축구협회에 한국대표팀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과 페루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다”며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핀투 감독을 최종후보군에는 올려놓지 않아 실제 면접까지 이뤄지진 않았다. 얼마 뒤 울리 슈틸리케(62) 감독이 선임되면서 핀투 감독의 한국행은 자연스럽게 무산됐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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