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바스라진 매미와 지렁이, 비명횡사한 고슴도치와 토끼. 어린 호모 사피엔스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작은 동물들의 죽음에 마땅한 대접을 해주기로 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중. 울프 닐손 글, 에바 에릭손 그림. 시공주니어 제공.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울프 닐손 글ㆍ에바 에릭손 그림ㆍ임정희 옮김
시공주니어 발행ㆍ36쪽ㆍ8,000원

무더위에 잠을 설치고 베개 자국 선명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타달타달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데 발끝에 툭, 매미다. 밤새 그리도 울어대더니 벌써 이번 생을 끝냈구나. 나동그라진 매미 옆에 바싹 말라 반쯤 바스러진 또 다른 매미, 보도블록에 납작 붙어 아예 무늬가 된 지렁이가 보인다. “세상은 온통 죽은 동물들로 가득해.” 에스테르가 귓가에서 종알댄다. 에스테르는 스웨덴 작가 울프 닐손이 쓰고 에바 에릭손이 그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의 주인공이다.

어느 나른한 여름날, 에스테르가 죽은 벌 한 마리를 발견했다. 벌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몸에 난 줄무늬, 무성한 털, 찢어진 날개. 울컥한다. “불쌍한 아기 벌!” 말괄량이 삐삐의 후예임이 틀림없는, 씩씩한 에스테르가 구덩이를 판다. “생각이 많고 머리에 든 단어도 아주 많아” 글을 곧잘 짓는 ‘나’는 죽은 벌을 위해 시를 쓴다. 아이들은 비밀 놀이터에 벌을 묻고 십자가를 세우고 꽃으로 둘레를 꾸미고 추모시를 읊는다. “손 안의 어린 생명이/ 갑자기 사라졌네/ 땅속 깊은 곳으로”

그러나 어디 벌뿐이랴, 덤불에는 죽은 새와 나비와 쥐가 있고, 찻길에는 비명횡사한 고슴도치와 토끼가 있다. 사람이 아닌 까닭에 존중 받지 못하는 주검이다. 그리하여 어린 호모 사피엔스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세상의 ‘모든 죽은 작은 동물들’(이 책의 원제목이다)에게 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해주기로 한다.

덤불을 뒤져 찾은 들쥐, 천 일 동안 쳇바퀴만 돌다가 이제야 겨우 지친 발을 쉬게 된 햄스터, 안락사 당한 늙은 수탉, 덫에 걸린 쥐, 차에 치여 죽은 고슴도치…. 아이들은 온종일 동물들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종종거리는데 어째 갈수록 염불보다 잿밥이다. 멋진 장례식을 해줄 테니 돈을 내라질 않나, “작고 보잘것없는 동물” 대신 크고 번듯한 동물을 찾질 않나. 결국 장례식은 “아주 착한 일”의 탈을 쓴 재미난 놀이일 뿐인가.

해질 녘, 뿌듯한 하루를 만끽하던 아이들은 지빠귀가 창문에 부딪혀 떨어지는 걸 목격한다. 새가 유리창에 꽝 하고 부딪치는 것을, 흙먼지를 일으키며 날개를 파닥이는 것을, 부리를 벌리고 다리를 움찔하고 이윽고 숨을 거두는 것을, 삶과 죽음이 자리를 바꾸는 바로 그 순간을. “너의 노래는 끝났다네. 삶이 가면 죽음이 오네.”

지빠귀의 몸에 남아 있는 온기,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애도하듯 울어대는 새, 영원히 잊히지 않을 어떤 것. 안다고 생각한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은 얼마나 다른가.

살아 있는 것들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아이들은 이제 전처럼 놀지 못할 것이다. 매미가 운다.

최정선 어린이책 편집ㆍ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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