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카르보나라 사진의 먹음직한 크림은 로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카르보나라 사진의 먹음직한 크림은 로션?

입력
2016.08.12 04:40
0 0
화면 속 음식을 때 빼고 광 내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주방에 흔한 시술 도구들. 꼬치와 시침핀, 토치, 쇠꼬챙이와 면봉, 붓, 스포이드, 글리세린과 젤라틴, 스프레이, 주사기, 핀셋 정도는 언제나 동원된다.
화면 속 음식을 때 빼고 광 내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주방에 흔한 시술 도구들. 꼬치와 시침핀, 토치, 쇠꼬챙이와 면봉, 붓, 스포이드, 글리세린과 젤라틴, 스프레이, 주사기, 핀셋 정도는 언제나 동원된다.

TV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인기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황금 시간대는 저녁 식사 아니면 야식 시간대와 겹친다. CF를 보면 침샘이 폭발한다. 저 피자며 치킨이며,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맥주라니! 편의점 역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시락, 샌드위치, 삼각김밥이 꽉 찬 냉장 쇼케이스 앞에선 발길을 떼기가 힘들다. 포장재마다 먹기 좋게 생긴 예시 사진이 붙어 있어서다. 분명 투명한 뚜껑 아래 실물이 훤히 보이는데도 왜 겉면 포장의 사진만 들여다 보게 되는 걸까?

패스트푸드 식당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식당 밖 유리창에는 언제나 햄버거며 치킨 윙, 아니면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 사진이 클로즈업된 포스터가 붙어 있다. 떠나는 발길도 붙든다. 더욱이 잡지의 음식 화보를 떠올려 보면 숫제 예술의 영역으로 넘어 간다. 탐식 너머의 지평, 탐미의 세계다. 그 와중에도 물론 그 하나하나의 윤기 어린 면면을 자세히 보면서 또다시 군침을 꼴깍 삼킴은 당연하다.

다이어트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 이들 영상과 사진은 온전히 먹고 싶게 하려는 의도만을 듬뿍 담는다. 맛있게 보이는 화면은 식욕을 자극하고, 그 제품을 구매해야 할 당위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사명이다. 깜찍한 거짓말, 잘 꾸며진 현실이다. 연출된 조리 예는 어디까지나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것임을 그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라면 겉포장 사진과 할리우드 스타의 잡지 화보가 가진 공통점이다.

음식 촬영의 화면 밖에는 아무 것도 없거나, 난장판이 되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대개의 촬영환경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 팀은 테이블 몇 개와 휴대용 버너를 놓고 쪼그려 앉아 작업하곤 한다. 밑손질을 마친 재료를 마무리만 해서 컷이 바뀔 때마다 바로바로 교체해주는 순발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언제나 음식은 최소 서너 품 이상 대체용까지 넘치도록 준비한다.
음식 촬영의 화면 밖에는 아무 것도 없거나, 난장판이 되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대개의 촬영환경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 팀은 테이블 몇 개와 휴대용 버너를 놓고 쪼그려 앉아 작업하곤 한다. 밑손질을 마친 재료를 마무리만 해서 컷이 바뀔 때마다 바로바로 교체해주는 순발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언제나 음식은 최소 서너 품 이상 대체용까지 넘치도록 준비한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영업비밀

셀피(selfie) 속 나와 거울 속 내가 다르듯, 맛나 보이는 그 화면 속 음식에는 함정이 있다. 렌즈 건너편 그 음식은 당신이 아는 그 음식이 아니다. 먹을 수 없게 돼있거나, 맛이 아주 없다. 오로지 비주얼을 위해 현현을 포기한 피사체다. 음식 분야의 TV CF, 음식 프로그램뿐 아니라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먹방, 쿡방, 지면 광고, 패키지 사진, 잡지 음식 화보에서 음식의 비주얼을 때 빼고 광 내주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영업 비밀을 물어봤다. 익명을 조건으로 3명의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이 가진 각각의 노하우를 털어 놓았으니, SNS 음식 사진에 활용할 수 있는 실생활적인 팁으로 참고해도 좋겠다.

공통적인 노하우는 100개 중 1개를 취하는 선택과 집중이다. 자연은 우연의 산물이고, 그 안엔 잘 생긴 것부터 못 생긴 것까지 골고루다. 식재료는 항상 대량으로 준비해 화면 잘 받는 개체만 선별한다. 이 ‘노가다’는 밥이 최고로 꼽힌다. 밥알 하나하나 깨지지 않고 모양이 완전한 곳을 골라 겉에 한 톨 한 톨 세우는 것이 일이다. 과자는 미리 잔뜩 뜯어 A, B, C 세 등급으로 나눠둔다.

햄버거는 토마토와 야채를 제외하면 모두 실제 제품을 그대로 사용한다. 속 재료는 모두 전면을 향해 돌출되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재료가 앞으로 쏠려 텅 빈 뒷면은 빵이나 지우개 등으로 공간을 메워 안정적으로 쌓이게 한다. 소스는 바르지 않는다. 주사기에 담아 보이는 쪽으로만 찍 뿌린다. 소스가 주르르 흐르는 마성의 비주얼이 완성된다. 피자도 실제 제품으로 똑같이 현장에서 구워가며 찍되, 토핑을 가지런하게 올린다. 치즈가 죽 늘어나는 결정적인 장면은 보수공사를 통해 만들어 낸다. 먼저 한 쪽을 잘라낸 후 도우 위 아래로 모차렐라 치즈를 덧대고 그 부분만 녹인다. 당대 최고의 몸값으로 모셔온 스타가 지정된 그 조각을 들어올리면 치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맞춤맞게 따라 올라온다.

치킨은? 실제 제품을 똑같이 사용하는 건 마찬가지다. 단 미용실을 거쳐 카메라 앞에 선다. 들쭉날쭉한 튀김옷을 가위로 정리해 우리가 아는 그 닭다리 모양으로 만든다. 외과수술을 거치는 경우도 있다. 닭이 익으면서 겉껍질이 수축되어 터지지 않도록 다른 부위의 껍질을 여분으로 덧댄다. 핀 등으로 고정한 후 튀기거나 오븐에 굽는다. 통닭이 나올 때는? 닭의 포즈를 식용본드나 시침질 같은 정형외과적 시술로 최대한 섹시하게 고정한 후 겉면만 토치로 굽는다. 고기는 그래도 실제로 굽는데, 그릴 모양이 나야 할 때는 그릴보다 불에 달군 쇠꼬챙이가 더 모양이 잘 난다.

카레나 짜장 소스도 흔히 보는 비주얼이다. 채소는 익히면 색이 변하는데, 그러면 맛없어 보인다. 따라서 소스 부분만 거르고, 채소는 따로 손질해 덜 익혀 색이 예쁜 상태로 세팅한다. 채소 색이 변하게 하는 산이 사용되는 탕수육 등 소스에선 식초를 생략한다. 소스는 녹말물을 풀어 걸쭉하고 윤기 나는 제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필수다. 카르보나라 등 크림 소스류는 오래 두면 기름이 분리되며 모양이 흉해지므로 밀크로션을 사용하기도 한다.

음식 촬영은 햄버거 깨 위치 하나도 정교하게 연출할 정도로 정교한 작업이다. SNS에 내가 올린 음식 사진과 상업적인 음식 사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출발선부터 다른 게임이요, 체급부터 다른 게임이다.
음식 촬영은 햄버거 깨 위치 하나도 정교하게 연출할 정도로 정교한 작업이다. SNS에 내가 올린 음식 사진과 상업적인 음식 사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출발선부터 다른 게임이요, 체급부터 다른 게임이다.

음식 촬영 현장의 트릭들

얼음은 뜨거운 조명을 사용하는 촬영 현장에서 난관 중 하나다. 아이스크림은 모형이 사용되는 희귀한 경우도 있지만 흔한 것은 버터 반죽으로 만든 가짜 아이스크림이다. 슈거파우더와 버터, 쇼트닝, 물엿, 계란흰자 등을 동원해 실제 제품과 똑같은, 그러나 실온에서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고전적인 팥빙수는 모두 간 얼음 대신 소금을 써서 촬영했다. 소금이 모방할 수 없는 눈꽃 빙수는 일단 완성한 후 드라이아이스가 가득 찬 아이스박스에 넣어 온도를 더 식힌 후 빠르게 촬영한다. 슬러시는 꽃꽂이 용품 중 겔을 불려서 갈면 모양이 비슷하게 나온다. 이 가짜 슬러시를 돌림판에 얹고 찰흙칼 등 도구를 사용해 모양을 조형한다. 음료 속에 들어간 얼음은 드라이아이스의 찬 온도로 식혀 쓰기도 하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얼음일 때가 많다.

맥주의 생명은 끓어오르는 탄산과 부드러운 거품이다. 전에는 소금, 설탕, 미원 등 거품 폭탄을 만드는 가루를 사용했다. 요즘은 HD화면에서 가루가 티 날 때가 많아 정공법으로 낙차를 이용해 낸 거품을 꺼질 때마다 보충해가며 촬영한다. 거품이 흘러야 한다면? 과학이다. 잔 입에 물을 묻히면 그 방향으로만 흘러내린다. 탄산음료는 원래 제품이 가진 탄산이 화면 상에서 부족해 보일 때 탄산이 많은 타 제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색감이 더 필요할 때는 식용색소를 보태 화면에서도 눈에 잘 띄는 쨍한 색감을 만든다. 물감은 겉도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요즘은 넣지 않는다. 식용색소는 조색을 통해 어떤 색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색이 너무 진한 레드와인은 화면에서 단지 시커멓게 나올 뿐이므로 물을 타 희석하고, 엷은 노란색을 띄는 화이트와인은 물에 간장을 살짝 떨어트리면 같은 색을 낼 수 있다.

주스 비주얼의 생명은 탱탱한 과육에 있다. 주스에서 과육을 골라내 예쁜 것만 골라 넣거나, 실제 과일 과육을 추려 보태 넣는다. 시리얼 광고에서 우유는 중요한 한 끗이다. 시리얼을 눅눅하게 적시지 않으면서도 밀도감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 우유로는 그 비주얼이 나오지 않는다. 연유, 생크림, 요거트 등을 섞어 되직한 우유의 질감을 만들어 낸다. 예전처럼 흰색 페인트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커피는 되레 트릭 없이 정직하다. 실제 제품을 그대로 사용할 때가 대부분이다. 프렌치 프레스로 오래 유지되는 거품을 내고, 신선한 원두를 사용하고 압출이 잘되고 크레마가 듬뿍 나오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준비할 뿐이다.

냉장고, 김치냉장고 광고에선 아삭아삭 싱싱하게 보관되는 배추김치가 꼭 등장한다. 이 김치는 먹을 것이 못 된다. 전혀 익지 않은 김치일 때가 많고, 소금물에 데쳐 푸릇푸릇한 색을 간직한 배추에 홍고추를 갈아 더 붉은 색을 내는 묘한 양념을 겹겹이 채워 넣기도 한다. 그 안의 채소와 고기와 생선은? 장시간 촬영에 대비해 투명한 베이비오일로 겉면을 마사지해주어 색이 변하거나 수분이 날아가 모양이 쭈그러드는 것을 막는다. 생 채소, 과일은 싱싱해 보이려면 탱글탱글한 물방울을 얹는 것이 효과적이다. 범위가 넓다면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좁다면 스포이드나 주사기로 물방울을 방울방울 올린다. 물방울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면 글리세린을 주사기로 떨어트린다.

라면은 최대 난제로 손꼽힌다. 면이 금세 불어터지기 때문이다. 모델이 먹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 면은 반만 삶아 한 입 크기로 빗질해 몇 십 개나 젓가락에 걸쳐 놓는다. 먹기 직전에 끓고 있는 스프 국물에 담가 마저 익혀 건넨다. 건더기 스프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모양 좋은 것만 선별해 사용한다. 스프 국물은 원래 제품의 스프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색이 부족할 경우엔 역시 고추장이 최고다. 고추장을 풀어 더 맛깔진 색을 낸다. 비빔라면은? 면을 따로 익혀 모양을 만들어 쌓고 붓으로 꼼꼼히 색과 윤기를 보강한 소스를 바른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