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8월 12일
고대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46~120)는 그리스ㆍ로마의 위인 50명의 이야기를 23편의비교 열전과 4편의 전기 형식으로 남겼다. ‘영웅전’이라 알려진 제목처럼 그들은 모두 빼어난 남성들이었다. 그는 자기보다 100년 남짓 먼저 태어나 만 39년을 살다간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B.C 69~ B.C 30)의 이야기를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이야기 속 엑스트라로 언급했다.
클레오파트라는 근 300년간 이어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마지막 파라오였다. 선왕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 딸로 태어난 그는 춤과 노래 등 예능에 능했고, 왕조의 여성 군주로선 처음으로 문자를 익혀 집권 후 궁정 토론을 주도할 만큼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미모와 재치, 섬세한 정치 감각이 그의 매력을 더했을 것이다.
그는 파란의 시대 약소국의 군주로서 탁월한 정치력으로 한때나마 오리엔트의 통치권을 쥐었던 탁월한 군주였다. 옥타비아누스의 누나와 결혼한 유부남 안토니우스와 중혼, 쌍둥이 아들을 낳았고, 안토니우스가 파르티아 원정으로 획득한 키프로스, 리비아, 시리아 등 오리엔트의 통치권을 넘겨받아 통치했다.
카이사르의 적자이자 배신당한 누나의 동생인 옥타비아누스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다는 소문에 실의,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사실을 안 클레오파트라 역시 미리 마련해둔 자신의 영묘에 남편의 시신을 먼저 안치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악티움 해전 직후인 B.C 30년 8월 12일이었다.
역사의 패자(敗者)로 스러진 탓이 크겠지만, 남성 권력자들의 게임에 뛰어든 여성의 재능과 야심은 장점이 아니라 자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예가 흔하다. 후세는 클레오파트라를, 제국의 영웅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호려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고 스스로도 파멸한 요부로 기록했다.
그가 정말 미인이었는지 이설이 많고(장애나 유전적 기형의 신체를 지녔다는 설도 있다), 통념처럼 정말 뱀에 물려 자살했는지도 불확실하다. 그의 무덤을 찾는 일은 고대이집트를 연구하는 학계의 숙원 중 하나이고 무덤이 열리면 진실의 일부도 확인될 테지만, 그런다고 팜므파탈의 전설이 금세 대신 묻힐 가능성은 없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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