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하루 항생제 사용량
OECD 평균보다 34% 많아
남용 탓 내성비율도 월등 높아
감기 항생제 처방률 따라
의원 간 수가 차등 폭 확대
감염관리실 설치 병원 늘리기로
“중장기 로드맵 수립” 평가 속
“구체 방안 부족” 지적 나와
정부가 2020년까지 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비율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전체 항생제 사용량도 현재보다 20% 줄이기로 했다. 이른바 슈퍼박테리아로 불리며 세계적 보건 위협 요소로 부상한 항생제 내성균의 발생 및 유행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11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조정정책회의를 열고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16~2020)’을 확정했다. 민간 전문가 및 보건당국자 30여명이 참여한 민관협의체가 5월부터 논의한 결과물이다. ▦의료기관의 항생제 남용 억제 ▦감염관리 강화 ▦농축산물에 대한 항생제 및 내성균 감시ㆍ관리 통합체제 구축 등이 이번 대책의 골자다.
한국 항생제 사용량ㆍ내성균 비율 압도적
이번 조치는 항생제 내성균 유행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했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항생제는 감염병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이지만, 부주의한 사용으로 인한 내성균 출현으로 항생제가 무용지물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항생제 처방량, 내성균 비율이 여타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아 더욱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려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대표적 항생제 내성균인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VRE)은 장, 구강, 요도에 주로 서식하며 호흡기 감염이나 뇌수막염을 일으키는데 패혈증 환자가 이에 감염돼 사망한 사례도 있다. 최근 들어 문제가 되고 있는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은 감염 시 요로감염, 폐렴, 패혈증 등 다양한 질환을 일으킨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슈퍼항생제로 불리는 카바페넴마저 내성이 생기면 이를 대체할 방법이 없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항생제 내성 문제 대응을 위한 글로벌 행동계획을 채택하고, 다음달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와 유엔 총회에서도 항생제 내성균 문제가 의제로 채택되는 등 국제적 대응이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항생제 남용으로 내성균 유행에 특히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하루 인체 항생제 사용량은 2014년 기준으로 1,000명당 31.7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12개국ㆍ23.7명)보다 34%가량 많다. 특히 급성상기도감염(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은 지난해 44%를 기록, 네덜란드(14%) 호주(32.4%) 등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세균성 감염일 때만 듣는 항생제를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감기에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항생제가 남용되다 보니 항생제 내성비율도 선진국에 비해 월등이 높은 수준으로 보이고 있다. 예컨대 VRE 비율은 한국이 36.5%로, 영국(21.3%) 독일(9.1%) 프랑스(0.5%) 등을 압도하고 있다. 보건의료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속한 치료를 원하는 의료 소비자의 요청, 세균성ㆍ바이러스성 감염 감별 비용을 줄이려는 의료진의 편의주의 등이 항생제 처방 남용의 주요 요인으로 분석됐다.
“항생제 남용 유발 환경 개선 필요”
정부는 이번 5개년 대책의 목표로 ▦전체 항생제 사용량 20% 감소 ▦급성상기도감염(감기) 항생제 처방률 50% 감소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 20% 감소 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감기 항생제 처방률에 따른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가 차등 폭을 확대, 항생제 적정 사용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항생제를 적정 사용한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간 수가 차이는 현재 평균 연 200만~250만원 수준에서 2019년 600만~750만원 규모로 커진다.
병원 응급실ㆍ중환자실 등이 주된 내성균 전염 장소인 점을 감안, 감염관리실 설치 대상 병원이 확대되고 인력 부족을 겪는 감염 전문의가 한시적으로 집중 양성된다. 보건, 농축수산, 식품, 환경 분야를 통합한 내성균 통합감시체계를 구축, 사람 동물 환경간의 내성균 전파 경로를 파악하고 원유 및 수산물에 대한 유해물질 검사를 강화하는 조치도 시행된다. 내성균 연구, 백신 개발 등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강화, 항생제 사용량 모니터링, 범국가적 캠페인을 위한 ‘항생제 바로 쓰기 운동본부’ 출범 등도 대책에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에 대해 항생제 문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중장기 로드맵이 수립됐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의료 환경의 근본적인 개선과 의료 현장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 방안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엄중식 한림대 의대 교수는 “내성균이 발생해 병원 내 또는 지역사회에서 퍼질 때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같이 세워야 하는데, 이번 대책은 선언적 수준에서 그친 감이 있다”고 주장했다. 엄 교수는 또 “감기만 해도 이것이 세균성인지 바이러스성인지, 증상이 비슷한 다른 질병인지 등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감별하고 항생제 처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낮은 의료수가 등으로 조성된 지금의 ‘5분 진료’ 환경에선 언감생심”이라고 지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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