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ㆍ독일전서 거듭 부진했지만
멕시코전서도 선발로 낙점받아
창의적 플레이 부활 8강행 견인
/그림 1권창훈이 11일 멕시코와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 브라질리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작년 한해 한국 축구에서 가장 주목 받은 선수를 꼽는다면 단연 권창훈(22ㆍ수원삼성)이다.
프로 3년 차에 소속 팀에서 만개한 기량을 펼쳤고 국가대표에도 뽑히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팬들에게 확실히 알렸다.
권창훈은 1994년생으로 1993년생인 리우올림픽 주축 선수들보다 한 살 어리지만 당당히 주전이다. 그가 국가대표와 올림픽대표에 동시에 뽑히다 보니 당분간 올림픽에만 집중하기로 울리 슈틸리케(62) 국가대표 감독과 신태용(46) 올림픽대표 감독이 ‘신사협정’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잦은 대표팀 차출은 선수들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프로와 대표를 오가며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권창훈도 작년부터 올 여름까지 휴식 없이 달려왔다. 작년 한해만 46경기(프로 35ㆍ국가대표 7ㆍ올림픽대표 4)를 뛰었다. 올 초에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을 겸한 23세 이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이후에도 선수층이 엷은 소속 팀 사정 탓에 쉴 틈이 거의 없었다. 피곤하면 부상이 쉽게 온다. 결국 권창훈은 지난 5월 K리그 포항과의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6월 국내에서 열린 4개국 올림픽 대표팀 초청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브라질에 입성할 때도 몸 상태가 100%는 아니었다.
그는 이번 대회 피지(8-0), 독일(3-3)과 조별리그에서 연속 선발로 나섰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슈팅을 보여주지 못했다. 피지를 상대로 2골을 넣었지만 파괴력 넘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곁에 있는 동료를 보지 못하고 욕심을 부려 흐름을 끊곤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마음이 급하고 시야가 좁아졌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권창훈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8강 진출이 걸린 멕시코전에서도 선발로 낙점했다.
두 가지 이유다.
조별리그에서 최대한 많이 뛰며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해야 더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권창훈이 고비에서 한 방 터뜨려 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결국 그가 해냈다.
가장 중요한 순간 해결사가 됐다. 멕시코와 경기에서 후반 32분 상대 수비를 연이어 따돌린 뒤 장기인 왼발 대포알 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8강행에 디딤돌을 놨다. 이날 대표팀 경기 내용은 멕시코에 밀렸지만 권창훈은 위축되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 교체되기 전까지 활발히 움직이며 창의적인 플레이와 빠른 판단력으로 공격을 주도했다. 권창훈은 경기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팀 동료 모두 함께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하다 보니 찬스가 생겼던 것 같다”고 공을 나머지 선수들에게 돌렸다.
권창훈은 아버지 권상영(57)씨가 서울 강남구에서 28년째 빵집을 하며 뒷바라지한 사연이 알려져 별명이 ‘빵훈이’다. 월드컵에 세 차례 출전해 11골을 기록한 독일 축구의 전설 위르겐 클린스만(52ㆍ현 미국 감독)도 선수 시절 ‘보트낭 빵집 아들’로 불렸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보트낭의 빵집 아들이었다. 팬들은 권창훈이 올림픽 2회 연속 메달의 꿈을 달성하고 클린스만처럼 성장해 ‘서울 빵집 아들’로 불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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