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사태를 겪으며 많이 배웠으니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직원들 고생이 더 컸지 제가 속상할 것은 없어요. 나라를 위한 뜻 있는 일로 도움을 요청해온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직을 사임한 지 8개월 만에 서울시향과 다시 만난 지휘자 정명훈은 10일 한껏 몸을 낮췄다. 그는 2014년 말부터 불거진 서울시향 사태로 서울시향을 떠났다. 박현정 전 대표와 직원들 사이의 갈등, 그 과정에서 불거진 박 전 대표와의 명예훼손 공방 등으로 홍역을 치르던 와중에 내린 결정이었다. 지난달 잠시 귀국해 검찰과 경찰 조사를 받은 정 전 감독은 항공료 등 공금 횡령 고발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최근 무혐의로 결론 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덜었다.
오는 19일 서울시향의 롯데콘서트홀 개관공연과 이달 말 라스칼라 오케스트라ㆍ합창단 내한공연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이날 귀국해 세종문화회관 내 연습실에서 진행한 서울시향과의 리허설을 전후로 그간의 소회를 풀어냈다.
우선 서울시향 사태로 한국에 오기 꺼려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나보다는 직원들이 고생했다. 나는 도와달라는 직원들 요청에 응했을 뿐이라 크게 고생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검찰 조사를 마치고 ‘만세’ 포즈를 취한 이유를 묻자 “만세라기보다는 14시간 가까이 조사받으며 모든 것을 다 말하고 나온 속 시원함에 팔을 뻗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정명훈은 “일로 음악을 하기보다는 음악으로 다른 이들에게 특별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한다”며 “예전에 라디오프랑스를 이끌던 시절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았던 것처럼 뜻있는 활동을 위주로 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예술감독은 생각이 없다”며 “감독직에는 여러 판단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오케스트라와)서로 신뢰와 애정을 가지지 않으면 계속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음악을 통해 한국을 도울 수 있는 일은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서울시향을 처음 맡은 것도 서울시향이라는 특정 단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하나 있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 동안 나라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무엇이든 해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정명훈은 “서울시향은 내 자녀와 같이 생각하고 키운 존재”라며 “단원 모두 잘하는 음악가들이고 10년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수준을 끌어올렸는데 그게 쉽게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신뢰를 보냈다.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9번 실황음반을 예로 들어 “서울시향이 이처럼 최고의 연주를 했을 때 이를 따라갈 오케스트라는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포함해서 어디에도 없다”며 “관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시향 예산이 3, 4년 전부터 줄어들었고 취임 때 약속받은 전용 콘서트홀 건립 사업은 착수도 못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감독직에서 물러난 것도 사실 지원이 잘 안된 이유가 크다”며 “단원 실력과 지휘자 능력, 지원 등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떨어지면 현 수준을 유지할 수는 있어도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향의 새 예술감독 선임과 관련해서는 “내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을 맡았던 20여년 전에는 거기서 살다시피 했다”며 “일을 제대로 하려면 그런 에너지가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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