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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결혼식, 사랑의 장애물

입력
2016.08.1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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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630만원, 2009년 1억7,542만원이었던 평균 결혼비용이 올해는 2억7,000만원이 되었다고 한다. 직장인 평균연봉 3,172만원에 견주어본다면 신혼부부 한 쌍의 4년 3개월 치 급여액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이 일해야 결혼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을 수는 없는 데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이 평균 미만의 소득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 신혼부부는 부모의 노후자금을 사용하든지 아니면 채무를 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이 비용의 대부분은 물론 주택비용이다. 하지만 평균 주택비용 1억9,000만원을 제외해도 8,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 올해 미국의 평균 결혼비용은 약 3,800만원, 프랑스는 약 1,200만원이라고 한다. 주택비용을 빼고도 한국의 결혼비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

혹자는 이런 현상의 원인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의 결혼비용이 높아지는 근본 원인은 결혼을 남녀가 아니라 가족 간의 결합으로 여기는 문화 때문이다. 이름도 모르는 먼 친척들이 상석에 앉고, 얼굴도 모르는 부모의 지인들이 그다음에 앉는다. 신랑 신부에게 이들은 모두 남이나 다름없다. 남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에게 예물을 돌리고 예식에 초대하느라 혼례 규모가 비대해진다. 상대 집안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기란 어렵다. 타인의 시선이란 결국 상대 집안의 시선이다.

때로는 양가의 하객 수를 맞추기 위해 하객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도 한다. 조선 선조 때 대사헌을 지낸 윤국형은 그 시대의 사치스러워진 혼례 풍속을 ‘갑진만필’에 남긴 바 있다. 전에는 아주 가까운 열댓 명의 사람들만 하객으로 불렀는데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삼십 명이 넘는 하객을 부르게 되었다며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만일 그가 몇백 명의 하객을 부르는 오늘날의 결혼식을 봤다면 뒷목을 잡고 기절했을 것이다.

옛날에는 혼례를 대개 신부의 집에서 치렀다. 신랑은 가장 절친한 소수의 들러리만을 대동할 수 있었다. 친척이나 이웃, 동료라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초대하거나 참석하는 것을 결례로 여겼다. 혼례는 신랑신부의 삶의 중요한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혼례의 사회적 역할은 영리목적의 웨딩업체에 휘둘리며 전통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본래 결혼식이란 하객들을 증인 삼아 그 결혼을 공인받는 예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결혼을 증거하는 것은 예식이 아닌 혼인관계증명서다. 무엇보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라면 애초에 공인 자체가 불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절반 이상의 부부가 혼례를 치르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결혼식은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 전달하는 퍼포먼스가 됐다. 이때 신부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순결함을 표현해야 하는 단순한 사물이 된다. 이런 결혼식은 우리의 ‘혼종(混種) 근대성’을 드러낸다. 의복과 형식은 서구의 것을 모방하였지만 내용은 씨족사회의 풍습에 가깝다. 결혼에 이르는 과정 또한 그렇다. 예전처럼 결혼 상대를 정해주지는 않지만 부모는 여전히 최종 결재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양가 부모의 승낙을 받은 상태에서, 즉 결혼이 이미 예정된 상태에서 청혼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번잡한 의례는 대체로 문명의 발전에 반비례한다. 근대문명은 합리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요하지 않은 의례는 자연히 사라진다. 유교문명은 온갖 허례허식을 없애고 관혼상제만 남겼는데, 지금은 그 가운데 관례와 제례도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혼례만은 점점 더 큰 비용을 들이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결혼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 축의금을 부담하는 하객들에게도 값비싼 결혼식은 달갑지 않다. 계몽된 시민에게 결혼은 자유로운 개인 간의 결합이다. 결혼식이야말로 사랑의 결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까.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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