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을 언급할 때 최규석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한 영화계 관계자의 단언이다. ‘부산행’을 연출하며 올해 첫 1,000만 영화를 배출한 연 감독의 작품세계에 최 작가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연 감독은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 ‘돼지의 왕’부터 18일 개봉하는 ‘서울역’까지 최 작가와 함께 ‘콜라보’를 이루고 있다. ‘서울역’은 ‘부산행’의 전편 격에 해당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시작된 서울역을 배경으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 감독은 가족용 또는 어린이용으로 치부되던 애니메이션에 사회비판적 목소리를 담아왔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 ‘창’ 등 전작들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한국사회에 대한 암울한 전망은 ‘서울역’으로 집약된다.
연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사실적이면서도 음울한 그림체로 특징화된다. 그림체는 작품의 비관적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대변한다. ‘돼지의 왕’부터 항상 원안 작업을 함께해온 최 작가의 작품관과도 맞닿아 있다. 최 작가는 ‘서울역’ 캐릭터 원화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JTBC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된 웹툰 ‘송곳’의 원작자로 유명한 최 작가는 여러 작품들에서 한국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이 시대 청춘들의 눅눅한 현실을 풍자한 ‘습지생태보고서’, 성인이 된 공룡 둘리가 이주노동자로 전락한 충격적 전개를 담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한국 현대사의 그늘진 이면을 포착한 ‘대한민국 원주민’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연 감독과 최 작가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명대학교 동문으로 만나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서로의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고 받으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표 감독ㆍ작가로 함께 성장했다. 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캐릭터를 설계하면, 최 작가가 원화 디자인을 맡아 연 감독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협업해 왔다.
‘돼지의 왕’도 두 사람의 의기투합에서 시작됐다. 각각 시나리오와 그림을 담당해 만화 한 편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출발점이었다. 군복무 중 ‘돼지의 왕’ 시놉시스를 완성한 연 감독은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틀었고, 최 작가가 만화 대신 원안 작업에 참여해 연 감독의 장편 데뷔를 도왔다. 믿음과 구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이비’의 강렬한 메시지도 최 작가의 사실적인 그림체와 선명한 비주얼에서 힘을 얻는다. 연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과 ‘창’은 최 작가의 단편 만화가 원작이다.
연 감독은 지금도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최 작가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부산행’에 등장하는 마지막 노래 ‘알로하오에’도 최 작가의 추천이었다는 전언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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