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40ㆍ두산)이 지난 7일 부산 롯데전에서 4안타를 몰아쳤을 때 LG 팬들은 한 선수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날 전까지 현역 선수 가운데 홍성흔과 통산 최다안타 공동 1위(2,042개)에 올라 있던 이병규(42ㆍLG)는 2위로 밀려났다. 팀 후배 박용택(37)에게 추월 당할 날도 멀지 않았다.
2014년 역대 최소경기 2,000안타를 달성했을 때만 해도 독보적인 페이스로 양준혁의 기록(2,318개)을 넘보던 이병규의 안타 시계는 양상문(55) 감독의 부임과 함께 멈췄다. 2014년까지 연 평균 141개의 안타를 쳤던 이병규가 144경기로 늘어난 최근 2년 동안 경기에 출전했다면 최다안타 신기록에 거의 근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 감독은 올 시즌 이병규의 거취에 대한 질문이 가끔 나올 때마다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말을 돌렸다. “6세 꼬마 팬들이 성인이 됐을 때는 우승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논란을 더 키웠고, 모 야구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병규를 올리려면 박용택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엔 아예 LG 더그아웃에선 이병규라는 이름은 금기시되는 것처럼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곤 했다. 양 감독 스스로도 타당한 명분이 없기 때문으로밖에 받아 들일 수 없다. 이병규뿐 아니라 베테랑 선수들을 모조리 뺐다면 전체적인 방향은 짐작할 수 있지만 지금 LG의 선수 기용은 이도 저도 아니다.
양 감독은 2014년 부임하면서 기자들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 선수들이 야구에 집중하기 위해 가급적이면 개별 인터뷰는 자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취재진 입장에서 불편한 요구일 수도 있지만 9년 만에 사령탑에 복귀한 양 감독의 열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궁금한 건 내가 모두 답변해줄 테니 나에게 물어보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리빌딩이 아니라 그냥 ‘이병규 죽이기’로밖에 안 보인다는 팬들의 항변에, 야구인들의 수군거림에 취재진을 통해서라도 확실한 답을 줄 필요가 있다.
단순히 나이가 가장 많아서라는 이유라면 “20세건 40세건 실력으로 평가하겠다”는 자신의 말과 배치되는 것이고, 주루나 수비가 안 된다는 이유라면 왜 홍성흔이나 이승엽(40ㆍ삼성), 이호준(40ㆍNC)처럼 활용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해야 하며 야구 외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 역시 밝혀야 한다. 그럴 만한 업적을 남긴 선수이고 팬들은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반대로 그런 선수를 이유 없이 방치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간판 선수와 끝이 안 좋았던 기억이 많았던 LG다. 기약 없는 2군 생활 속에서도 모범적인 몸 관리를 하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이병규의 마지막은“나이에 상관없이 기회를 주겠다”던 양 감독에 의해 아름답게 마무리될 것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배신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암흑기에도 이병규를 보는 낙으로 야구장을 찾았던 그들에겐 눈앞의 6연승보다, 올해 5강에 드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이병규는 묵묵히 재활을 마치고 지난 8일 이천구장에서 열린 경찰청과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복귀했다.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첫 두 타석에서 볼넷을 골랐고, 세 번째 타석에서는 이윤학(경찰청)의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쳤다. 낮게 떨어지는 유인구였지만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답게 정타를 만들어냈다. 3회 볼넷으로 출루한 뒤에는 후속 이병규(33)의 중전 안타 때 3루까지 전력 질주했다. 이병규의 퓨처스리그 시즌 타율은 4할1푼3리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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