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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왜 패션을 싫어할까?

입력
2016.08.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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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중 유독 패션만 여성의 것으로 한정되며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의식주 중 유독 패션만 여성의 것으로 한정되며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진보나 보수, 부자와 빈자, 여자와 남자 가리지 않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옷을 입어야 하는 존재다. 사적 공간에서야, 옷을 벗든 입든 상관이 없지만 사회라는 무대로, 문턱을 나서는 순간 인간은 착장을 한다. 이만하면 패션이 인간의 보편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인간 보편성의 문제를 다룬다고 말하는 철학은 왜 패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일까? 툭하면 패션은 여성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사람들은 서구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읽는 강의는 ‘진중하게’ 대한다. 하지만 동일 시간, 패션 스타일링 클래스는 ‘여자들만 듣는 강의’ 정도로 생각한다. 방송을 봐도 그렇다. 의식주 중 옷만 유독 홀대를 받는다. 음식 프로그램은 다양한 조리법을 소개하고, 유명인사의 냉장고를 털어 새로운 요리를 즉석에서 만든다. 미식을 주제로 특정 음식이 왜 좋은가를 꼼꼼하게 따져 묻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음식 재료에 대한 비평도 가미된다. 집의 경우는 어떤가? 집을 개조하는 건축가들은, 공간을 ‘어떤 식으로’ 탈바꿈시킬 것인지 나름의 방법과 리폼 이후의 ‘효과’에 대해 생각을 개진한다. 공간과 인간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한다.

하지만 패션의 경우는 어떤가? 대부분 경진대회 형식을 빌려 대회에 나온 이들을 경쟁시킨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디자인 전문가들은 차가운 논평을 통해 ‘최고의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를 뽑는 것에만 유념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매체를 통한 각종 패션 경진대회는 ‘전공자들의 세계’가 될 뿐이다. ‘좋은 옷’에 대한 판단 기준, 철학, 미적인 조건을 공유하며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고민할 기회는 어디에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식주 가운데 식과 주의 문제는 대중이 함께 철학을 하는 수준에 이르러도, 유독 패션만 이 수준에 도달하질 못하고 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에서 “복식과 패션을 여성의 허영심과 관련된 한낱 하찮은 것”이며 “여성의 복식이나 패션은 의상에 변화를 줌으로써 여성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며, 나아가 자신의 미를 드높이지만 이러한 여성의 지혜는 이성적인 것이 아닌 감각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복식과 패션은 철학적 탐구의 대상에서 배제되거나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저 여성적인 영역으로서 유용할 뿐, 근본을 추구하며 지속적이고 심오한 남성의 지성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남과 여 모두 옷을 입고 살아간다. 패션이 인간 사회 내부에서 일련의 변화를 형성하는 ‘현상’이라면 철학은 여기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설령 패션이 여성만의 문제라고 폄하해도 그렇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가 과연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여성들은 남자에 비해 ‘보편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는 건 아닐까? 솔직히 대철학자의 말이라고 인용은 했지만 이렇게 성차별적인 발언이 어디에 있는가? 여성은 패션을 통해 남성에 의해 ‘보여지는 존재’일 뿐, 여성을 보고 평가하는 주체는 ‘이성적 남성’이란 생각의 뿌리는 지금도 여전하다. 철학하는 이들이 늘어야, 한 시대의 사람들의 태도와 사고에 변화가 생긴다. 패션을 철학할 수 있는 분위기가 사회에 퍼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진심으로.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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