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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된 전기료 누진제, 뜯어고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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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된 전기료 누진제, 뜯어고칠 때 됐다

입력
2016.08.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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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의 창문이 폭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열려 있다. 연합뉴스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의 창문이 폭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열려 있다. 연합뉴스

오일쇼크 당시 징벌적 성격으로 도입

요금체계도 원가와 연동 안 돼 불합리

“저소득층 부담 늘고 전력 대란 우려”

정부, 누진제 개편 목소리 일축 불구

전문가들 “변화된 시대 맞게 바꿔야”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밤잠을 설치는 주부 김모(34)씨는 요즘 오전 10시만 되면 집을 나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의 백화점으로 간다. 집에 있는 에어컨을 틀면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올까 봐 걱정이 돼 냉방이 잘 된 백화점을 찾는 게 그의 피서법이다. 김씨는 미리 약속한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한 뒤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전기요금 누진제를 다소 완화, 에어컨 좀 마음 놓고 사용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찜통 더위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워 에어컨을 장식품으로만 쓰고 있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누진제를 폐지할 경우 결국 저소득층 부담이 늘고 오히려‘부자감세’만 될 것이란 반론도 적잖다. 시대에 안 맞는 과도한 누진제는 다소 완화하는 한편 원가와 연동되지 않는 불합리한 전기요금 체계는 이번 기회에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 요금은 전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전기요금 단가가 올라가는 누진제가 적용되고 있다. 사용량에 따라 6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사용량이 적은 1구간(100㎾h 미만)에선 1㎾h 당 전기요금이 60.7원이지만 사용량이 500㎾h를 초과하는 6구간에 들어서면 1㎾h 당 전기요금이 709.5원으로 11.7배나 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월 평균 500㎾h 초과 전력을 사용한 가정은 전체 2,204만여가구 중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누진제가 적용됨에 따라 한전이 이들에게 거둔 수익은 월 평균 469억원으로, 전체 주택용 전기요금 수익(6,214억원)의 7.6%나 됐다.

시민들은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과도한 누진제가 적용되고 있는 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쓰는 일반용(1㎾h당 105.7원)과 기업들이 사용하는 산업용(1㎾h 당 81원) 전기 요금은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등급 간 요금차가 지나치게 크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도 전기요금 누진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누진제 최저 구간과 최고 구간의 요금 차이인 누진율은 우리의 11.7배보다 훨씬 적은 1.1~4.0배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74년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누진율은 1.6배였다.

그러나 정부는 정전대란 재발 우려, 저소득층 부담 증가 등 이유로 누진제 개편에 반대하고 있다. 누진제를 폐지할 경우 전력 소비가 급증, 전기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갑자기 모든 전력 시스템이 정지되는 대규모 정전(블랙 아웃)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도 9일 “누진제 개편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주택용 전기는 현재도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다”며 “전력 대란 위기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누진제를 완화해 전기를 더 쓰게 하는 구조로 갈 순 없다”고 밝혔다. 그는 “여름철 전력 수요를 낮추려면 누진제가 필요하다”며 “여름철에도 전력을 마음껏 쓰게 하려면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채 실장은 이어 “현재 누진제 6단계 가구의 비중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누진제를 개편하면 결국 상대적으로 전기를 적게 쓰는 사람에게서 요금을 많이 걷어 전력 소비가 많은 사람의 요금을 깎아주는 부자감세 구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조차 못 튼다’는 불만에 대해서도 정부는 에어컨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채 실장은 “벽걸이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 사용하거나 거실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4시간 사용하면 월 요금이 10만원을 넘지 않는다”며 “에어컨을 두 대씩 사용하거나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 이상 가동할 경우 전기요금이 20만원 이상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환경에 맞는 전기요금 개편 필요성을 제기했다. 1973년 ‘오일쇼크’로 원유 가격이 폭등하자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이듬해 도입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이젠 변화된 시대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전체 전기의 대부분은 산업에서 쓰고 있고, 가정용 전기사용량은 13% 정도에 불과하다”며 “주택용 전기 사용이 늘어나면 전력대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는 정부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누진제는 에너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기 오일쇼크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져 ‘징벌’의 성격이 강하다”며 “전기도 제품인데 누진제는 많이 사면 가격을 깎아주는 시장 원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형편이 넉넉한 1인 가구가 가장 싸게 전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종수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도 “현행 전기요금제도를 개편할 경우 저소득층에 부담이 어느 정도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는 가격이 아니라 에너지바우처나 소득이전 등 다른 수단으로 해소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누진제를 완화하면서도 저소득층 부담이 늘지 않도록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기요금 개편 방법으론 연료비연동제가 제시됐다. 원가보다 턱 없이 낮은 농업용 전기요금도 수술이 필요하다. 유 원장은 “도시가스나 지역난방처럼 발전원가(연료비)에 전기요금을 연동해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다만 시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분기나 반기마다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업계와 계층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민감한 사안인 만큼 누진제 완화나 요금체계 개편에 앞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우선이며,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추후 문제”라고 주문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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