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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금메달만 중한가

입력
2016.08.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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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도 73㎏급 결승전에서 부상 투혼 끝에 패한 왕기춘은 매트에서 한참 동안 울었다. 이를 본 외국 기자가 한국 기자에게 물었다. “은메달을 땄는데 왜 계속 울죠? 좋아서 우는 건가요?”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은메달에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2등은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선수들을 좌절시키는가를 보여줬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는 대기업 광고카피처럼 1등만을 위한 무한경쟁의 장으로 내몰던 때도 있었다.

▦ 리우 올림픽 성화 최종주자였던 브라질 마라토너 반데를레이 리마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선두를 달리다 결승점을 앞두고 난입한 관중 탓에 금메달을 놓친 ‘비운의 마라토너’다. 3위를 차지한 그는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올림픽 정신을 지켰다”고 했다. 이듬해 동료들이 명예 금메달을 만들어 선물하려 하자 “내 동메달이 더 마음에 든다”며 사양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미국 뉴욕타임스는 각 종목의 4등 선수들만 인터뷰해 기획기사를 실었다. 루지 개인전에서 4위를 한 독일 선수는 “누군가는 4등을 해야 하는데, 그게 나다”고 당당히 말했다.

▦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눈물과 사과를 연일 보게 된다. 3연속 금메달에 도전했던 진종오는 10m 공기권총 결선을 5위로 마치자 “죄송합니다”는 한마디만 남기고 도망치듯 떠나야 했다. 수영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예선 탈락한 박태환은 “인터뷰하는 것도 민망하다”며 고개를 떨궜고, 유도에서 값진 은메달을 딴 정보경도 “금메달을 따지 못해 국민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 금메달 우선주의는 선수들의 부담감을 높이고 경기력을 떨어뜨린다. 단체전 8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여자 양궁 선수와 감독도 “금메달의 압박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메달을 따지 못하는 종목은 태릉에서부터 훈련일수를 제한 받고, 학교에서는 팀 해체 얘기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말로는 “즐기고 오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 목표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1등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와 미디어 보도 행태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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