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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 “안 만나면 그만”… 김영란법 핑계로 ‘불통’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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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 “안 만나면 그만”… 김영란법 핑계로 ‘불통’ 어쩌나

입력
2016.08.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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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 등 “비 올 땐 피하자”

‘김영란 신드롬’ 복지부동 조짐

업계 “시장 상황 설명 필요한데”

탁상행정으로 인한 피해 우려

공청회 등 공식 창구 활성화하고

민원 처리과정 투명한 공개 필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실행을 앞두고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공무원들이 점심 식사 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서재훈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실행을 앞두고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공무원들이 점심 식사 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서재훈기자

“저희 입장만 생각하면 그냥 안 만나면 그만이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랬다고, 아무래도 민간인들 만나기 부담스러우니까요. 하지만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공무원이 업계 분들 안 만나는 것에 익숙해질 텐데, 그게 과연 좋은 일일지…”(경제부처 과장 A씨)

“법 시행 초반엔 공무원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최근 공무원들 반응은 ‘비 올 땐 피하자’는 겁니다. 당분간 안 만나겠다는 거죠.”(대기업 대관(代官)업무 담당 B부장)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다음달 시행을 앞두고, 공직사회와 관련 업계가 우려하는 상황 중 하나는 공무원들이 업계 관계자나 민원인을 대면하는 창을 완전히 닫아 버리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신변에 문제 될 소지가 있다면 문제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키는 관료사회의 특성이 여론수렴 창구 차단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 사태 이후 관료사회를 뒤흔들었던 ‘변양호 신드롬(보신주의)’이 이번엔 ‘김영란 신드롬’으로 재현되지 않겠느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안 만나면 그만” 움츠리는 官

실제 경제부처를 비롯한 공직사회 내에서는 김영란법 시행 후 사람 만나기를 꺼리게 될 거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경제부처 A과장은 “단속 시범케이스가 안 되려면 연말까지는 업계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고, 금융당국 고위 인사 C씨 역시 “앞으로는 커피 한 잔 마시는 정도만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세종시라는 ‘지리적 한계’에, 김영란법이라는 ‘제도적 압박’까지 더해져 공무원 사회의 고립이 더 심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경제부처 D과장은 “지금도 업계 사람을 세종시로 부르기 어려워 서울서 만나거나 오송역 부근에서 가까스로 만난다”며 “법이 시행되면 아무래도 대면 접촉에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소극성은 결국 공무원 사회의 복지부동을 더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주도했다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다 한참 뒤에야 무죄가 확정된 사건 이후, 관료사회에서는 국익이 걸렸더라도 위험한 일을 아예 시도하려 하지 않는 보신주의 경향이 팽배했다. 이성근 영남대 교수는 “특히 민원 성격이 강한 업무나 인허가 분야에서 공무원의 소극적 대응이 우려된다”며 “부정한 청탁이 줄어드는 효과는 있겠지만 민감한 업무엔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셧다운 걱정하는 민간

답답한 쪽은 시장 의견을 관계부처에 수시로 전달해야만 하는 관련 업계다. 한 금융회사의 E과장은 “정책에 따라 업계가 받는 영향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공무원이 업계 사정을 모르고 탁상행정을 하면 시장만 애먼 피해를 받게 된다”고 걱정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무원과의 공식적 만남 이외의 접촉은 당분간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송통신 관련 협회 간부 F씨는 “이전에 쉽게 만나던 자리도 이제 눈치가 보일 것”이라며 “공식회의가 끝나고 공무원에게 ‘식사나 하고 가시죠’란 말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무원을 상대하는 담당자들도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으려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금융권 대관 업무 담당자 G씨는 “사정당국이 국면전환용으로 세게 단속을 할 텐데 연말까지는 납작 엎드려 있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관과의 접촉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결국 대기업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G씨는 “학벌 등 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해져, 인력에서 강점을 갖춘 대기업이 민원을 독점하는 현상도 가능하다”고 걱정했다. 이미 일부 대기업은 직원들이 직접 공무원을 만나는 방식을 배제하고 행정사나 국회보좌관 출신 등으로 별도 팀을 꾸리는 것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청회 등 공적통로 강화가 숙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막고 언로를 차단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청회, 설명회, 간담회 등 공식 창구를 활성화하고 투명화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런 제도 개선이 김영란법 하에서 민관(民官) 소통을 강화하는 현실적 해법이 될 거라는 얘기다. 최병대 한양대 교수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사회의 위축 가능성이 있지만 민관이 서로 조심해 가며 접근하면 될 일”이라며 “공식적인 제도와 틀 범위 내에서 만남을 가지면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청회나 간담회를 요식행위로 생각하고 의견수렴을 하는 시늉만 내고 마는 관행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김병섭 서울대 교수는 “공청회나 설명회는 지속적으로 개최해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계속 들어줘야 한다”며 “찬반이 맞서는 데도 사전에 정해진 대로 정책을 강행한다면 각종 의혹과 불만들만 쌓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상시적인 민원 창구를 활성화하고 그 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민원인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며 “북유럽의 의회나 정부 사례를 보면 여론수렴의 문턱이 매우 낮고 공무원과 민원인이 규정을 지켜가며 매우 편한 분위기에서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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