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불이 꺼지자 아직은 ‘요릭’을 ‘요릿’으로 발음하는, 어린 햄릿이 바구니에서 인형을 하나씩 꺼내 무대 가장자리에 세운다. 무대 불이 꺼졌다 켜지자 이번에는 성인 햄릿이 무대 중심에 선다. 다시 불이 꺼졌다 켜지며 가장자리를 장식한 클로디어스, 거트루드, 폴로니어스 인형이 인간으로 분해 관객들이 알고 있는 바로 그 햄릿 이야기가 펼쳐진다.
10월 16일까지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햄릿 더 플레이’는 익히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새롭게 해석, 변주한다. 원작에 없는 어린 햄릿, 해골로만 등장했던 광대 요릭을 등장시켜 성인 햄릿의 시대와 어린 햄릿의 시대를 씨줄 날줄로 교차한다. 원작에서 성인 햄릿이 선왕 유령이 한 말의 ‘진실’을 찾는 방법으로 삼촌 클로디어스 앞에서 선왕 독살극 ‘쥐덫’을 무대에 올린다면, 어린 햄릿은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 선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 선왕을 대신해 복수하는 연극을 만든다. 요컨대 ‘햄릿 더 플레이’는 어린 햄릿이 공연하는 연극을 우리가 익히 알던 ‘햄릿’으로 설정한 ‘극중 극’인 셈이다.
제작진의 비장한 의도와는 별개로 뚜껑을 열어본 작품은 흔히 아는 햄릿의 얼개를 그대로 따라갔다. 원작 사이사이 어린 햄릿이 공연을 준비하며 요릭과 주고받는 대화는 ‘삶이 곧 연극’이라는 원작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반복하지만 예상보다 분량이 적은데다 전체를 삭제해도 전개에 무리가 없을 만큼 사족에 가깝다. 원작과 결말도 같고 추억의 명대사도 대부분 그대로 나온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거짓이라는 미끼로 진실의 잉어를 낚는다’ 같은 대사는 여러 번 강조된다. 극 후반 어린 햄릿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시점에서 햄릿과 레어티스가 펜싱 대결을 펼치는 하이라이트 설정은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이 작품의 재미는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온다. 프로 데뷔 후 14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김강우는 영화에서 선보인 자연스러운 연기에서 벗어나 정확한 발음과 에너지 넘치는 몸짓, 풍부한 표정 연기로 무대를 압도했다. 다분히 연극적인 연기는 시와 산문에 절반쯤 걸친 셰익스피어 특유의 문어체 대사와 맞물려 시너지를 발휘한다. 왕비 거트루드와 햄릿의 연인 오필리어를 한 배우가 연기하게 한 설정은 다소 부자연스러웠지만, 이 역을 맡은 배우 이진희 역시 두 인물의 목소리를 달리하며 확연하게 구분되는 연기를 선보인다. 클로디어스 역을 맡은 배우 이갑선은 극적인 장면에서 흡인력 강한 연기로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배우들이 연기 도중 자연스럽게 무대 위 구조물을 옮기면서 중간중간의 암전을 최소화해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 동선, 흰색(클로디어스의 결혼)과 검정색(선왕의 죽음)으로 어느 사건에 더 가치를 둔 인물인가 드러낸 의상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햄릿 역에 김동원, 클로디어스에 김대령, 오필리어 역에 서태영이 더블캐스팅됐다. (02)766-6007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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