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더위와싸우는사람들)
장비만 30킬로그램, “빨리 뛰어!” 하지마세요
“현장에서는 더위를 느낀 적이 없어요. 상황이 종료되면 ‘오늘도 덥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하죠, 하하하!”
짧은 스포츠머리에 검게 그을린 전국현(34·소방교) 반장은 해군 SSU(해난구조대) 부사관 제대 후 2010년 119소방구조대에 특채로 입사했다. 119구조대원으로 지낸 지 7년 이지만 선배들에 비하면 햇병아리나 마찬가지라고 너스레를 떤다.
“구조 끝난 뒤에야 화상 입은 줄 알아요”
여름철에 가장 힘든 업무를 꼽으라면 당연히 화재현장 출동이다. 전 대원이 특수부대 부사관 이상 출신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들이지만 화재현장에서는 조심스럽다. 불이 난 곳에 직접 들어가 인명을 구조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방화복과 공소통, 안면마스크 등 몸에 걸치는 장비만 30킬로그램 가까이 된다. 출동차 뒷좌석에서 방화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출동한다. 화재현장에 도착하면 온몸이 축축하지만 느낄 새도 없이 화마 속으로 뛰어든다. 상황이 종료되면 그때서야 온몸이 젖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건물화재의 경우 방화복을 입어도 들어가는 순간 발이 멈칫할 정도로 열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뜨거운 열이 방화복 틈새로 느껴지면 본능적으로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죠. ‘생존자가 있을까’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화재현장의 사망사고는 화상으로 사망하기보다 연기 때문에 질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초를 다투는 구조가 필수입니다. 현장에서는 긴박감 때문에 덥다고 느낄 여유가 없습니다. 상황종료 후 팔이나 다리에 ‘화상을 입었구나’라고 느끼곤 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은 그들에게는 일상이다. 연기 때문에 팔을 뻗으면 손이 안 보일 정도로 시야 확보가 어렵다.
“감으로 가는 거죠. 낮은 포복이나 오리걸음으로 벽을 짚고 들어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을 찾거나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다른 생존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현장을 빠져나옵니다.”
“2만보 이상 걸어야 하루 일과가 끝납니다”
대부분의 출동이 야외나 재난처다 보니 햇볕에 그을리는 건 일상이고 몸에 흉터가 가실 날이 없다. 긴급한 상황이다 보니 오해의 소지도 많다. 소방차보다 먼저 도착하는 SUV 차량에 구조 장비를 싣고 현장에 도착하면 “왜 물을 가져오지 않느냐”며 고함을 치는 이들부터 “느긋하게 걸어 다닌다”며 불만을 터트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30kg이 넘는 장비와 방독면을 쓰고 움직이다 보니 뛸 수가 없다. 넘어질 경우 오히려 구조대원의 부상 위험도 있다.
황당한 신고도 많다. ‘강아지 발이 문틀에 끼었다.’, ‘남자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자 한 통만 보내 달라’는 등 별의별 신고가 다 있지만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무조건 출동은 해야 한다. 재난부터 사소한 것까지 다 출동하다 보니 상황실에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교대로 출동한다. 대원들은 하루 2만 보 이상은 기본일 정도로 바쁘게 뛰어다닌다.
“체력이 받쳐줘야 되다 보니 흡연자가 거의 없습니다. 구조대 생활을 하면서 금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매일 극한 상황의 연속이다 보니 대원들은 퇴행성 무릎질환, 디스크 등 여러 가지 고질병은 하나씩 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이 고충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모두가 천직으로 알고 자부심 하나로 더위 속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세 살배기 딸의 사진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니는 그는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사람은 많다. 소방관도 그 중 한 사람일 뿐이다”며 “더위와 싸우는 이들로 보기보다 사명감으로 묵묵히 일하는 이들로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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