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태국의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군부는 5년간의 민정 이양기 동안 정치에 보다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됐다.
7일 태국 전역의 9만4,000여개 투표소에서 군부 주도로 마련된 개헌안 인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된 결과(개표 91% 진행), 전체 유권자의 62%가 개헌에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솜차이 스리수티야코른 선거관리위원장은 개표 막판 기자회견에서 “개표가 91% 진행된 가운데 개헌안 찬성표가 62%, 반대표가 38%로 집계됐다”라며 헌법안이 국민투표를 사실상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군부의 최고 권력기구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PO)는 내년 중반 예정된 총선 후 상원의원 총 250명에 대한 최종 지명권을 갖게 되는 등 차기 정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국민투표에 포함된 ‘하원이 총리를 선출하지 못할 경우 상원의원의 참여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추가 항목도 통과된다면 NCPO는 총리 선발에까지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밖에 개헌안 통과로 선출직 의원 중에서만 뽑던 총리도 비선출직 명망가 중에서 선출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게 된다. 공식적인 개표결과 발표까지는 사흘 가량이 추가로 소요될 전망이다.
2007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진행되면서 이날 태국 전역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결과에 따라 폭력 사태는 물론 군부 최고 지도자인 현 프라윳 찬 오차 총리와 쿠데타로 축출된 잉락 친나왓 전 총리로 나뉘는 태국 정치세력의 판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어서다. 이날 투표가 시행된 오전 8시(현지시간)부터 오후 4시까지 전국 투표소 주변에는 병력 20만 여명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반정부 세력과 군부 중심 정부의 충돌이 예상되면서 주 태국 미국대사관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일본, 핀란드 대사관 등은 일찌감치 태국 내 자국민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군부는 개헌안 통과를 어렵게 할 수 있는 여론전을 사전에 금지하는 등 사실상 불평등한 국민투표를 진행했다는 비판을 낳았다. 개헌안에 대한 의견표명 금지명령을 위반한 시민을 검거해 조사를 벌이기까지 했다. 정치권은 군부의 투표결과 조작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는 “정부가 국민투표를 앞두고 공포감을 조성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