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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웃고 터키 울고…테러가 바꾸는 관광 지도

입력
2016.08.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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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관광객. 게티이미지뱅크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관광객. 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제 폭발물 탐지기와 탐지견, 최신형 감시카메라, 그리고 100명이 넘는 보안 요원. 개미도 뚫지 못할 것 같은 안전 시스템을 일일이 검사하는 것이 이집트 ‘타바 하이츠’의 보안 담당자인 모하브 바크르의 하루 일과다. 시나이 반도의 휴양지 타바에 위치한 5성급 호텔 타바 하이츠에는 그러나 요즘 찾는 관광객이 없다. 바크르는 텅 빈 축구장 616개 규모의 호텔을 돌아보며 “어떤 설비를 더 갖추면 관광객 발길이 이어질지 모르겠다”며 한숨만 짓고 있다.

타바를 세계적 휴양지에서 ‘유령 도시’로 전락시킨 것은 이집트를 덮친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망령이다. IS 테러와 보복 공습이 이어지면서 여름을 잊지 않고 찾던 관광객들은 종적을 감췄다. 이집트뿐 아니라 터키와 튀니지도 테러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여행객의 발길이 대거 지중해 건너편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로 옮겨가면서 테러로 인한 관광 대국들의 희비가 극명히 갈리고 있다.

이집트 고대 유적도 테러 직격탄

독일 주간 슈피겔은 최근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가 세계 관광 지도를 승자와 패자로 가르고 있다”며 “이집트와 터키, 튀니지, 모로코에서는 대형 호텔 체인부터 가족 소유 사업장까지 도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에서 관광객을 수혈 받던 국가들에 일제히 여행 자제 권고가 내려지면서 기약 없이 외면 받는 상황이다.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 성 캐서린 수도원 등 주요 관광지 방문객에게 정부 차원에서 경호요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올해 1분기 관광객 유입이 전년 대비 절반으로 급감하는 등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나이 반도 샤름 엘셰이크 공항 발 러시아 여객기가 IS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으로 폭발한 후 독일, 영국 등 항공업체 상당수가 항공편 운항을 재개하지 않아 시나이 반도는 고립 상태나 다름 없다.

사정은 터키와 튀니지도 마찬가지다. 터키는 특히 앙카라에서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등 두 차례, 이스탄불에서 지난 1, 3, 6월 등 세 차례 연이어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소프트 타깃’으로 불리는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했다. 이에 터키의 관광 수도로 불리는 안탈리아는 올해 1~5월 동안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40%나 폭락했다. 안탈리아에 이르는 남부 토로스 산맥의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하야틀리 심색(50)은 “손님을 받은 지 3주나 됐다”며 “이대로면 반년 안에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좌절했다. 튀니지에서는 이미 지난해 휴양지 수스 해변과 수도 튀니스의 바르도 박물관에서 관광객 대상의 테러가 발생한 이후 호텔 70여곳이 줄도산했다.

테러 위협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관광 쇠락의 소용돌이로 몰아 가는 분위기다. 인근 국가에 비해 테러 공격이 적었던 요르단은 지역 전체에 위험 지대의 낙인이 찍혀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나예프 알 파예즈 요르단 관광부 장관은 “우리는 공격을 받은 적도 없는데 유럽 관광객들이 대폭 줄어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했다.

스페인ㆍ伊 넘치는 관광객에 고민

지중해 반대편에는 반대로 스페인과 같이 타 지역 테러의 반사이익으로 유례 없는 관광 특수를 누리는 국가들도 있다. 스페인의 올해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12% 늘었다. 호텔, 식당 등 서비스업 취업이 폭증하면서 7월 기준 실업률은 2010년 유럽 재정 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20%로 떨어졌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지난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를 2.7%에서 2.9%로 상향 조정하면서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는 이탈리아는 지난해 대비 5~20%의 관광객 증가로 인해 오히려 주민들이 불편을 겪어 관광객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인 이탈리아 서부 해안 친퀘 테레는 방문객이 연간 250만여명이나 쇄도하는 통에 방문 자체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탈리아 남서부 카프리 섬의 잔니 데 마르티니 시장 또한 “우리는 이미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한 한계치를 초과한 상태”라며 “넘치는 관광객으로 도시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국민 5명 중 1명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그리스는 전망이 다소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해 기준 그리스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2,600만명을 넘어서면서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여행자들 사이에 난민에 대한 거부감이 늘면서 비상 신호가 켜졌다. 엘레나 콘투라 그리스 관광부 장관은 “초반엔 난민 관련 갈등이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인도적으로 난민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긍정했다.

“서구 국가들 이중잣대에 피해”

눈에 띄는 관광업 격차에 쇠락 지역에서는 최근 선진국 정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독일, 영국 등 정부가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테러 위험에도 유독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여행 자제 또는 금지 권고를 내린다는 것이다. 이집트 타바 하이츠 호텔의 바크르 씨는 “파리 테러나 올랜도 총기난사가 일어나도 독일 외무부는 프랑스와 미국에 여행 경고를 내리지 않는다”며 “서방 정부는 우리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테러 성격의 차이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관광분야 세계 최대 민간단체인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의 데이비드 스코우실 회장은 “2015년 튀니지 테러처럼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사태가 일어날 경우 관광업이 원상태로 회복되려면 2년 이상이 걸린다”며 “반면 니스 테러처럼 무차별 공격이라면 대체로 6개월 내 매우 빠르게 관광객들이 돌아온다”고 독일 도이체벨레 방송에서 밝혔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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