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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유럽여행, 해보니 별거 아니네요”

입력
2016.08.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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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는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 연민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며 "장애라는 약간의 특징만 있을 뿐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홍서윤씨 제공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는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 연민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며 "장애라는 약간의 특징만 있을 뿐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홍서윤씨 제공

한 달간 여섯 나라를 혼자서 다니는 유럽여행. 전혀 특별할 것 같지 않은 여행이지만 그 주인공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면 의미가 달라진다. KBS 첫 여성 장애인 앵커였던 홍서윤(29)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해 초 5개월의 준비 끝에 9월 한 달간 유럽 곳곳을 다니며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 세계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어우러져 사는지 목격하고 돌아왔다. 주변의 걱정도 많았고 실제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여행 끝에 든 생각은 명쾌했다. “해보니 별거 아니네.”

세상의 길이 모든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면 홍씨가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 오르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한 달간의 유럽여행을 담아 최근 펴낸 책 제목도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다. 홍씨는 5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나 “열 살 때 사고가 나기 전까지 거의 주말마다 가족과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이후부터 다니지 못했다”며 “대학생 때 KTX를 처음 탄 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조성됐다는 걸 느꼈고 그때부터 여행을 다니며 기록하는 일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홍씨가 석사학위 논문으로 쓴 주제도 ‘이동할 수 있는 권리’였다. 그러니 그의 여행은 단순한 관광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 나서는 탐색의 과정이다. 오래전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청년 장애인들과 여행의 경험을 공유하고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논의를 나누던 그는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 문제를 여행과 접목해 풀어보고자 지난해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차렸다.

지난해 유럽여행이 홍씨가 떠난 첫 해외여행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필리핀으로 이주해 고등학교를 다녔고 귀국해서도 동남아, 일본 등을 여행했다. 재작년에는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싣고 스위스에서 친구와 만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홀로 장기간 여행을 다닌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엔 혼자 집 밖에 나가는 것도 두렵고 힘들었지만 환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다니다 보니 용기가 생기고 노하우가 늘더군요. 해외에도 혼자 여행 다니는 장애인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중도에 포기하더라도 아쉬워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온갖 변수를 예상하고 갔지만 직접 맞닥뜨린 변수는 더욱 많았다. 휠체어 바퀴가 터져서 멈춰선 적도 있었고 여행가방 바퀴가 고장 나 낑낑대며 숙소까지 끌고 간 적도 있다. 역무원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기차역 플랫폼에 밤늦게 갇히기도 했다. 유럽 구시가지의 돌길을 다니는 건 늘 고역이었다. 스위스처럼 장애인 여행자에게 천국 같은 곳도 있지만 서울보다 불편한 곳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 그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사람이었다. “유럽에선 편의시설이 없으면 사람을 배치하는 등 장애인이나 노인 등 약자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체계가 잡혀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좋은 건 허름한 숙박업소에 가도 직원들이 잘 대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두 함께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았어요.”

홍서윤씨는 2014년 스위스 인터라켄을 여행하며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패러글라이딩을 수소문한 끝에 결국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벅찬 감동에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는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홍서윤씨 제공
홍서윤씨는 2014년 스위스 인터라켄을 여행하며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패러글라이딩을 수소문한 끝에 결국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벅찬 감동에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는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홍서윤씨 제공

홍씨는 여행을 다녀온 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했다. 예전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망설였다면 이젠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말자’는 생각으로 도전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수확은 자신감이었다. 여행을 망설이는 다른 장애인에게도 “불편할 수는 있어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유럽에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했던 그는 앞으로 스카이다이빙, 스킨스쿠버도 해보고 싶단다.

홍씨는 “장애인이 문화 여가를 누릴 권리가 더욱 확장돼야 한다”며 “책이든 블로그든 여행을 다녀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애인이 더욱 많아지고, 장애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축제가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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