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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내고 쫓겨나고’ 그 이분법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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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내고 쫓겨나고’ 그 이분법을 넘어서

입력
2016.08.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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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농성 현장. 건물주인 가수 싸이와 세입자 사이 벌어진 갈등은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중 가장 첨예한 논란을 낳았다. 푸른숲 제공
지난해 9월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농성 현장. 건물주인 가수 싸이와 세입자 사이 벌어진 갈등은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중 가장 첨예한 논란을 낳았다. 푸른숲 제공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기획ㆍ신현준 이기웅 편저

푸른숲 발행ㆍ504쪽ㆍ2만5,000원

서울 연남동은 언제부터 연남동이었을까. 골목마다 빼곡한 작은 카페와 예쁜 공방, 지적인 독립서점과 검박하면서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협동조합들. 신자유주의의 저주를 유머러스하게 헤쳐가는 이 시대 청년들의 얼굴을 꼭 빼 닮은 동네로서의 연남동이 탄생한 것은 불과 3, 4년 전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남동은 연희동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했다. 전 대통령들의 거주지로서 연희동이 서울에서 손꼽히는 인지도를 자랑한 반면, 연남동은 1970, 80년대에 지어진 연립주택과 높은 ‘가성비’로 유명한 기사식당,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이 있는 동네로만 알려져 있었다. 여기에 일명 ‘홍대 유민’들이 흘러 들어온 것이 2012, 2013년 무렵이다. 이제는 사전에 등재되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홍대’란 단어의 의미는, 자유분방한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일 때 형성되는 젊고 쿨한 어떤 것으로 승화되어 연남동과 상수동 최근에는 망원동, 성산동까지 그 세를 퍼뜨리고 있다. 홍대발 에너지가 서울 서부를 빠르게 접수하는 모습은 분명 장관이지만, 그 뒤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그림자가 있다.

홍대서 밀려난 사람들

셰어하우스ㆍ월세 연대…

연남동서 대안 경제 모색하다

또다시 상처받지 않으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이면에도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뜻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용례는 대개 부정적이다. 가난한 예술가와 부유한 건물주의 대립은 더할 나위 없이 선정적이고, 이를 바라보는 언론과 대중의 반응 역시 한 가지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홍대를 떠나 연남동 골목에서 차분히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다른 관점을 요구한다. 지금 젠트리피케이션 담론에서 필요한 것은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정교한 관찰이다. 이 말이 영국에서 처음 쓰인 1960년대에 ‘쫓겨남’보다 ‘활성화’에 방점에 찍혀 있었다는 사실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선정적 이분법을 분쇄하고 더 세밀한 시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필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구한 최근 책들 중 가장 땀내 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문화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지리학자 등 국내 연구자 여덟 명은 각각 서촌, 종로3가, 홍대, 가로수길과 사이길, 한남동, 구로공단, 창신동, 해방촌에서 현장 연구를 진행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까지 진행된 현장 연구에는 참여관찰과 더불어 동네 토박이, 세입자, 건물주, 구청직원, 자영업자, 노동자, 문화예술인, 마을 활동가, 부동산 중개업자 등 젠트리피케이션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132명의 인터뷰가 포함됐다.

연구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 중 전치(轉置ㆍdisplacement)에 주목한다. 자신이 뿌리내린 장소(place)에서 부정(dis-) 당하는, 즉 쫓겨난 이들은 안정감의 상실, 불안, 무력감을 호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또다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옮겨간 곳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도모한다. 연남동 일대에서 활발하게 꽃피는 대안경제가 그 예다. 한 번 쫓겨난 이들은 셰어하우스를 만들어 주거비를 절약하고 주민 연대를 통한 월세 동결 방안을 기획한다. 이로써 연남동은 “하위 문화 청년 엘리트들의 배타적 놀이공간”이었던 홍대와는 확연히 다른 “폭넓은 세대와 계층에게 열린 자치 공간”이라는 색깔을 확보하게 된다. 홍대가 지난 세대 청년들의 얼굴이라면 연남동은 2010년을 사는 청년들의 얼굴이다.

저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범죄 현장’이 아닌 삶의 과정으로 인식함으로써, 모든 좋은 책들이 그렇듯 좋은 질문을 던진다. 구로공단의 제조업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들어선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지식노동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승자일까? 종로3가와 창신동을 낙후지역으로 선정해 도시재생 정책을 펼치는 서울시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장소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정책이 먼저인가, 자생이 먼저인가? 질문에 답하는 동안에도 서울은 역동적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각자 자신의 대답을 준비해야 할 때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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