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현실화하고 있다. 다만 공식적이고 직접적인 방식 대신 ‘저강도 압박 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국내 여론을 분열시켜 배치 시기를 늦춘 뒤 차기 정부와 모종의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최근 사드 배치 논란을 외교ㆍ안보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배치한 듯하다. 지난 1일부터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비롯한 관영매체들이 일제히 사드 문제를 적극 부각시키기 시작한 게 단적인 예다. 중국의 언론 환경을 감안할 때 당국이 공식적인 제재 방침을 내놓진 않았더라도 지금의 사드 관련 공세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최고지도부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국이 한류(韓流)를 중심으로 한 문화ㆍ엔터테인먼트ㆍ관광분야를 첫 타깃으로 삼은 데에는 나름의 계산이 있어 보인다. 외교적 정면충돌의 부담을 피하면서도 한국 내 일반국민들의 체감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란 점에서다. 이들 분야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라 간접적인 경제보복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는 국내 반대여론을 부추기고 불안감을 증폭시켜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관영매체들이 사드 배치 결정에 반대하는 국내 인사들의 기고나 인터뷰를 대서특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이 사드 문제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 대해선 사실상 묵인 내지는 방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은연중에 국내에서 “사드 배치 때문에 북한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기류가 확산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북중관계 개선은 북한을 고립시켜 핵을 포기시키겠다는 우리 외교정책의 골간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중국의 저강도 압박이 우리 정부에게 당장의 사드 배치 결정 번복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의 현실적인 목표는 내년으로 예정된 사드 배치 시기를 늦추도록 하는 것”이라며 “내년 말 대선 결과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도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우선은 사드가 내년에 배치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주력한 뒤 차기 정부와 어떤 식으로든 담판을 지으려 할 거란 예상이다.
이는 중국 측이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다른 소식통은 “중국 당국자들 중에선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판결 직전에 사드 배치가 전격 결정된 데 대해 배신감을 토로하며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의 자국 포위 구도에 박근혜 대통령이 동조했다고 여긴다는 얘기다. 인민일보가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박 대통령을 정면비판한 건 이 같은 기류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중장기적으로 정부 차원의 조치를 취하기 위한 수순밟기에 나선 측면도 있다. 관영매체들의 사드 때리기가 시작되자 중국 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되기 시작한 ‘혐한 기류’는 경제ㆍ안보분야 등에서 우리에 대한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보복 조치를 실행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실제 외교가에서는 중국 측이 자신들의 기대치가 전혀 충족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당국 차원에서 일정 부분 물리적 조치를 취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시점상으로는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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