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료 인하 협상ㆍ채무재조정 등
채권단, 내달까지 기다려 주기로
한진해운 부족자금 마련 방안
내주까지 제출해야 부활 시동
채권단-대주주 팽팽한 기싸움 속
조양호 회장 법정관리 택할 가능성도
내년 말까지 부족자금이 1조~1조2,000억원에 달하는 한진해운의 자금 마련 방안을 두고 채권단과 대주주 측이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채권단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결단을 한 달 더 기다려 주기로 했다. 조 회장 등 한진해운 대주주가 이달 중 어떻게든 자금을 구해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한진해운을 둘러싼 ‘치킨게임’이 파국(법정관리)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일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이날 종료 예정이던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 기간을 오는 9월4일까지 한달 더 연장하기로 했다. 앞서 채권단은 지난 5월4일 한진해운이 3개월 내 용선료 인하 협상과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등을 마치는 조건으로 채무 상환을 연기해줬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은 내달 4일까지 채무 상환 연기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채권단 등의 즉시 채무 상환 요구를 받아 법정관리로 보내진다.
특히 채무 재조정을 위한 사채권자 집회는 개최 3주 전 공지가 이뤄져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한진해운에 주어진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주 중에는 한진해운이 부족자금 마련 방안을 채권단 테이블 위에 올려놔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한진해운이 실현 가능한 자금 마련 방안을 가져온다는 전제 하에, 기한을 며칠 정도 추가 연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채권단 관계자는 “거기까지가 한진해운에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관용”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은 일단 선박금융 채무상환 유예를 통해 5,000억원 정도를 마련해보겠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은 영업에 필요한 배를 사들이기 위해 HSH노르드방크, 산은, 수출입은행 등 국내외 금융사 수십 곳에 약 2조5,000억원을 빌렸는데, 이중 5,000억원을 내년까지 갚아야 한다. 한진해운은 5,000억원의 상환 기한을 3년 정도 유예하는 조건으로 금리를 1~2%포인트 정도 올려 주는 방안을 금융사들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금융 채무상환 유예가 성공한다 해도 여전히 5,000억~7,000억원이 부족하지만 한진해운은 이 중 4,000억원 정도만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두 달 넘게 고수하고 있다. 나머지 1,000억~3,000억원은 채권단이 채워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누차 밝힌 채권단과 금융당국으로서 수용이 불가능한 조건이다. 대주주와 채권단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용선료 협상도 차질을 빚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 협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채권단이 직접 나서서 ‘용선료 인하 시 책임 지고 현대상선을 살리겠다’고 보증을 해줬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부족자금 마련 방안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선 채권단이 이런 지원에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최대주주인 대한항공의 타격이 막대한 만큼 결국엔 조 회장 등이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할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있다. 대한항공의 한진해운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5,000억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돼, 1,000억~3,000억원을 아끼겠다고 5,000억원 넘는 손실을 감내하지는 않을 거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상황이 꼭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해운업 경기가 되살아날 지 불분명한데다, 채권단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겹치면서 조 회장 등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행을 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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