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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생활의 윤기

입력
2016.08.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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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란 어쩔 수 없이 남이 사는 모양새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직업이다. 사람의 살림살이라는 게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시시콜콜한 속사정은 천 갈래 만 갈래여서 소설가들에게 이야깃거리는 좀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때로는 일삼아 혼자 호프집에 앉아 옆자리의 이야기를 훔쳐 듣거나 오일장을 어슬렁거리며 촌로들의 입말을 메모하기도 한다. 물론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한마을에 사는 이웃들의 이야기다.

열일곱 가구에 고작 삼십여 명인 시골 마을이라 숟가락 개수는 아니라도 대강의 살림을 알고 지내는데, 요즘 들어 새로 눈에 띄는 게 생겼다. 우리 마을은 두어 집을 빼고는 우리나라 농가당 평균 농토보다 훨씬 적다. 자경하는 논밭만으로는 도저히 자식들 교육이며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일찍부터 남의 일을 다니며 일종의 부수입을 올리는 집들이 많았다. 몇몇 남정네들은 주위에 생긴 공장에 다니고 여자들은 농번기에 농사일하러 다니며 살림에 보태는 정도였다. 농촌에서 품앗이라는 게 없어지면서 누구나 돈을 받고 남의 일을 돕지만 20, 30년 전만 해도 같은 마을 사람끼리 품삯을 주고받는다는 게 꽤나 어색한 일이었다.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당연히 대가를 지불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이 낮았다.

농촌에서 인건비가 오른 것은 노동력 부족과 함께 역시 최저임금이라는 걸 나라에서 해마다 책정해준 영향이 크다. 늘 그 언저리에서 품삯이 형성되었고 요즘 보통 열한 시간 정도 일하고 7만원쯤 받으니까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고된 농사일에 대한 대가로는 헐한 게 분명하다. 그런데 수십년째 일을 다니는, 그러니까 이제 칠십이 다 된 할머니들이 갑작스레 살림에 윤기가 돌기 시작한 걸 내가 뒤늦게 눈치챈 것이다. 마을에서 전문적으로 일을 다니는 사람은 다섯 명이고 그중에 둘은 혼자된 할머니들인데 다섯 집이 비슷하다. 목돈을 들여 집을 수리하고 이런저런 가전제품을 들여놓는가 하면 서울 사는 아들에게 차를 사주었다는 이까지 생겼다.

그들이 일하는 날은 많아야 한 달에 20일 정도다. 돈으로 치면 130만, 140만원이 최대 수입인 것이다. 그 정도 수입으로, 그러니까 최저임금으로 살림이 윤택해졌다고? 이는 이웃의 살림살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마을 대표 소설가로서 깊이 천착해볼 문제였다. 어쩌면 ‘최저임금으로 윤택하게 살기’라는 시대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연구의 결과는 다소 싱거운 것이었다. 도시에서라면 어림도 없을 살림이 가능했던 이유는 첫째, 그들에게는 옹색하나마 몸을 누일 집이 있었다. 둘째, 소규모 농토지만 한 해 섭생에 충분한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가 결정적인 것인데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소박한 삶의 방식이었다. 그 증거를 대라면 김영란법의 3만원짜리 밥값 논란에 대해 그렇게 비싼 밥이 있겠냐며 믿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덧붙이겠다.

집이 있고 먹거리를 자급자족한다면 누군들 최저임금으로 살지 못하겠냐고, 농촌 아닌 도시에서는 해당이 안 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집과 먹거리를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는 아이디어는 어떨까. 우리가 이룩한 생산력의 단계는 이미 오래전에 그 정도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던가. 이것은 우리의 헌법에서도 규정하고 있다. 행복추구권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항이 말하는 것은 명백하게 집과 먹거리가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혹시 지나치게 헌법을 무시하고 사문화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법의 취지에 맞게 집과 먹거리를 무상으로 달라고 국가에 당당하게 요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허황한 이야기를 자꾸,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자유로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한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이었다. 최저 임금으로 윤기 도는 생활을 꾸려가는 마을의 할머니들을 보며 떠올려본 생각이다.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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