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내가 만든 책이 독자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은 큰 기쁨이다. 얼마 전 한 독자가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공부, 직장일, 결혼 등으로 환경 변화가 잦으면서 그럴 때마다 키우던 고양이를 잠시 남에게 맡기는 탁묘를 하다 보니 안정적으로 고양이와 사는 것이 바람이던 분이었다. 그런데 그 바람을 이루었고 임신까지 했다니 얼마나 기쁜지.
그러면서도 혹시 이 행복에 훼방을 놓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우리 출판사의 ‘임신하면 왜 개, 고양이를 버릴까?’를 보내겠다고 했더니 이미 구입해서 부부의 필독서가 되었다고 했다. 뿌듯하면서도 6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이 여전히 필요한 게 씁쓸했다.
이 책은 기획 때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이 임신하고 반려동물을 버리는 이유가 ‘개, 고양이 때문에’ 임신이 안 되고, 기형아를 낳고, 아토피가 심해진다는 것인데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속설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텐데 굳이 책으로 만들어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웬걸? 반려동물 문화가 성숙되어도 이 현상은 강화되기만 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임신, 출산으로 반려동물을 버리는 일이 흔하다. 그렇다면 임신해도 반려동물을 버리지 않는 선진국 부모들은 자기 아이보다 개, 고양이가 더 소중한 것일까?
책을 만들면서 설문 조사를 했는데 결혼 이후 반려동물을 없애라는 압력을 한 번이라도 받았던 사람이 91%나 됐다.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하니 “임신 축하해! 개, 고양이 얼른 치워야지.”라고 반응했다는 부모님, 불룩한 배로 강아지와 산책을 나갔는데 “임신했으니 이제 개는 버려야겠네요.”했다는 지나가는 사람 등. 이 정도면 전 국민의 참견이다. 반려인이 임신을 하는 순간 개, 고양이는 생명이 아니라 균 덩어리, 수많은 질병의 진원이 된다.
반려동물을 없애라는 사람들은 주로 양가 부모님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개, 고양이는 마당에 묶여서 남은 밥이나 먹고, 목욕 한번 하지 않고 살다가 복날에 팔거나 잡아먹는 존재인데 귀한 손주와 방에서 뒹군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로부터 반려동물을 없애라고 권유 받은 경우도 55.6%나 되니 전문가들조차도 아군이 아닌 상황이다. 무책임한 매스미디어는 잊을만하면 ‘임산부는 고양이를 멀리하세요.’, ‘애완동물 배설물, 잘못하면 실명’등의 기사로 잘못된 정보를 확대재생산 하면서 겨우 설득한 부모님을 흔들어 놓는다.
이런 환경이니 임신, 육아 카페에는 3,4일이 멀다 하고 키우던 개, 고양이를 다른 곳으로 보낸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래서 이 책은 버리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의학적으로 빈틈없이 반박할 수 있도록 수많은 속설이 다 틀렸음을 꼼꼼하게 검증했다. 새 생명이 생겼다고 함께 살던 생명을 버리라는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책이 실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책을 만들면서 의외의 경우를 만났다. 온갖 시달림에도 반려동물을 지켜낸 반려인 중에 스스로 반려동물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한 사람이 27.8%나 됐다. 출산 후 아기를 돌보느라 반려동물을 잘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육체적, 시간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순간적인 흔들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까지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
이 책을 출간할 때만 해도 아기와 반려동물이 함께 크는 사진을 구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반려동물을 버리지 않겠다니 “니 새끼가 중하냐? 개새끼가 중하냐?”라는 추궁을 당했다는 분도 있었는데 이런 상황은 과거형일까 여전히 현재진행형일까?
당시 사람 아이와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고 있는 분들은 아이들이 책임감과 배려심이 깊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아이로 크고 있다고 말했다. 책에 소개됐던 가윤이, 조한이, 은찬이, 혜수, 예진이, 태경이 등등. 이 아이들은 6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에서 얼른 살고 싶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임신하면 왜 개, 고양이를 버릴까?, 권지형,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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