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 역시 사실 사람과 자연의 단절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지리산을 향하고 있는 이번 작품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2016 지리산국제환경생태예술제’의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돼 지난 달 방한한 영국의 대지예술가 크리스 드루리(68)는 2일 한국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을 “‘대지예술’보다 ‘환경예술’ ‘자연의 예술’로 불러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작품이 자연에 인공적인 무언가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연관 속에 존재하며, 그 역할 역시 관람객이 자연을 찾고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리산국제환경생태예술제는 환경예술 복합시설 건립 및 예술공동체 조성을 위해 경남 하동군에서 추진 중인 지리산생태아트파크 사업의 일환이다. ‘다시 자연으로’라는 주제로 10월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지리산 일대에서 올해 처음 열리는 예술제에서는 드루리 뿐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설치미술작품 전시, 다양한 공연 행사 등이 마련된다.
국내에서는 대지예술이 생소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이 작업이 활발했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드루리의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세계일주하는 팬이 나올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그의 작품은 인위적인 재료가 아닌 자연에서 찾은 재료로 만들어져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만들 때는 설치 장소의 ‘에너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동에 머무는 동안 그는 예술제가 열리는 지리산생태아트파크를 포함해 섬진강변, 노량 나루터 등을 두루 돌아봤다. 회화로 치면 설치 공간은 캔버스에 해당하는 중요한 요소다. 작품이 놓일 장소의 넓이부터 지역에서 발견되는 돌, 흙, 나무 등이 가진 특성, 또 작품과 함께 어우러질 산세 등 주변 경관까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당초 계획했던 서울 방문 일정을 미루고 하동에 더 머물며 작품 구상에 열중한 그는 “관찰해야 할 것들, 생각하고 느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아 겨우 작품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드루리는 하동에 대해 “강과 산이 어우러진데다 녹차 밭과 전통 가옥도 인상 깊고 만난 사람들은 친절하며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작품을 만들 때 사람을 포함한 주변 환경에서 발견한 것들을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돌과 풀이 작품에 포함될 것”이라며 하동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을 가장 ‘하동적인’ 작품으로 구현할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하동 녹차를 작품에 포함해 다른 재료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지리산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드루리는 “(도시 위주로 생활한)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소통에 익숙하지 않아 대지예술에 관심이 적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하동에서의 작품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이 자연 속에 설치되고 그 안에서 서서히 동화돼 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람객이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이번 예술제에는 시간 제약으로 1점의 작품만 선보이지만 행사를 마친 뒤 다시 한국을 찾아 추가 작품 활동을 하거나 대지예술 강연을 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드루리는 이번 7박 8일 방한을 마친 뒤 10월에 2주간 하동에서 머물며 본격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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