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격사유 뇌전증 불구 2회 갱신
2년간 3차례나 교통사고 전력
형식적 적성검사 도마 위에
지난달 31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부산 해운대구 교통사고 운전자가 뇌질환으로 약물치료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뇌질환자의 운전면허 취득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가로운 휴일 도심에서 발생한 이날 사고는 어이없는 참사였다. 이날 오후 5시 16분쯤 해운대구 미포방향에서 해운대문화회관 사거리로 시속 100㎞ 이상 질주하던 김모(53)씨의 푸조 차량은 정지신호를 아랑곳하지 않고 중앙선을 넘어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덮쳤고, 맞은편 차량들과 7중 추돌사고를 내고서야 멈췄다. 이 사고로 휴가를 온 모자 등 3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해운대경찰서 관계자는 1일 “김씨가 평소 고혈압, 협심증, 뇌질환 등을 앓고 있었으며, 지난해 9월 울산의 모 병원에서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고 11월부터 매일 2번 약을 복용하라는 처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뇌전증은 경련과 의식 장애를 일으키는 뇌질환의 일종으로 하루라도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수 있다.
경찰은 이번 사고가 김씨의 뇌질환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김씨는 사고 당시 시속 100㎞ 이상 속도로 질주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고를 냈다. 또 사고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씨는 앞서 2013년부터 2년간 3차례나 자체 피해 교통사고를 냈고, 운전을 하면서 보행로를 타고 올라가는 비정상적인 사고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뇌질환자가 버젓이 운전대를 잡도록 방치한 현행 운전면허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뇌전증은 운전면허시험 응시 결격사유이지만 응시자가 자신의 병력을 밝히지 않으면 면허 취득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1993년 운전면허를 취득한 김씨는 그 동안 2번의 적성검사에서 면허를 갱신받았지만 뇌질환에 대한 검증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나 지자체, 병무청 등은 정신질환자, 알코올ㆍ마약 중독자 등 운전면허 결격사유 해당자 정보를 도로교통공단에 보내 운전면허 유지 여부를 가리는 수시적성검사자료로 활용케 하지만 이 역시 형식적이다. 특히 뇌전증의 경우 통보대상에서 아예 제외돼 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독일처럼 개인 병력을 면허발급기관과 병원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결격사유에 해당하면 면허를 일단 보류하고 정밀 감정해 부적격자를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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