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지지율이 재역전 당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또다시 막말 파문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12년 전 이라크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무슬림계 미군 장교 후마윤 칸 대위 가족을 비난한 것인데, 군에 대한 존경과 애국심을 중시하는 공화당 내부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일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찬조 연사로 나와 트럼프를 공격했던 후마윤 대위 부모와 트럼프의 상호 비방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칸 집안과 트럼프의 갈등은 지난달 30일 트럼프가 칸 대위 어머니(가잘라 칸)를 비하하며 시작됐다. 그는 남편(키즈르 칸) 연설 중 옆에 섰던 가잘라 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 한 마디도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슬람의 여성 억압적 문화와 관계 있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이에 대해 키즈르 칸은 “트럼프는 검은 영혼의 소유자이며, ‘희생’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가잘라 칸도 “아들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는 것에 대한 정신적ㆍ신체적 쇠약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라며 “금성무공훈장을 받은 아들의 어머니인 나의 슬픔에 대해 전 세계와 모든 미국인은 이해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는 이에 “나는 부부의 부당한 공격에 대해 반격한 것이다. 사업에 성공하고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등 나도 사회를 위해 ‘희생’했다”고 재차 공격했다. 또 “내가 강조하는 것은 무슬림에 의한 테러”라고 덧붙였다.
칸 부부는 트럼프가 사과 대신 공격 강도를 높이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미치 매커널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의 입장 표명 및 트럼프 지지 중단선언을 요구했다.
칸 집안과 트럼프의 갈등이 예상 밖으로 확대되고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의 처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한 켈리 아요테(뉴햄프셔) 상원의원은 “칸 부부를 비하하고,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희생과 자신의 사업 성공을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한 것에 경악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이지만 트럼프 지지선언을 하지 않은 마이크 코프만(콜로라도) 하원의원도 “트럼프가 조국에 목숨 바친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고 말했다.
라이언 의장과 매커널 총무는 별도 성명을 통해 칸 부부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고 트럼프가 주장하는 ‘무슬림 이민자 배척’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거나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았다.
한편 일부에서는 ‘멕시코계 판사 비난’, ‘장애 언론인 비하’ 등 과거 파문을 쉽게 극복했던 것처럼 이번 논란도 단시간에 마무리되는 것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트럼프 지지계층의 응집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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