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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선언’

입력
2016.08.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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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8월 1일

2014년 11월 한국작가회이 창립 40주년 기자간담회. 연합뉴스
2014년 11월 한국작가회이 창립 40주년 기자간담회. 연합뉴스

시인 이성복과 소설가 이인성, 비평가 정다비(과리)는 1982년 5월 “젊은 문학세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한 자리에 모아 그 전모를 가늠해보고 또한 그 연대성을 획득케”하기 위해 부정기 문예지 ‘우리 세대의 문학’을 창간했다.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란 제목의 창간호에는 김정환 이성복 최승자 황지우 등이 시를 썼고, 이인성 최수철 등이 소설을 썼다.

거기 황지우 시 ‘같은 위도 위에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신문사에 있거나/ 지금도 대학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잘 들어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다/ 그렇다고 자학적으로 죄송해할 필요는 없겠지만(제발 좀 그래라)/ 그 속죄를 위해/(악으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시인은 그가 사는 도시와 같은 위도의 몇몇 도시들을 열거하며, “그 한 줄의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마루벽의 수은주가 자꾸”내려간다고 한 뒤 “산다는 것은 뭔가 바스락거리는 것인데/ 나도 바스락거리고 싶은데/ 내 손이 내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한다, 시늉만”이라고 썼다.

문인들의 ‘선언’은 65년 ‘한일회담 반대 100인 선언’이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 출범 계기가 된 74년 11월의 ‘문학인 101인 선언’, 79년 8월 유신 실패를 진단한 ‘문학(인) 선언’등이 있었다. 87년 소위 ‘민주화’ 이후 자실이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로 간판을 바꿔 건 이래 근년의 남일당,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그 목소리는 이어져왔다. 85년 오늘, 자실은 잇단 작가 구속과 책 판매금지, 문예지 ‘민족문학’ 압수 등에 항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학인 401인 선언’을 발표했다. ‘민주화’이전, 그들의 마지막 집단 함성이었다. 세월과 함께 시절도 달라져, 이제 누구도, 적어도 글로 기자나 교수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슴 칠 일은 여전하지만, 시늉만 할 필요도 이제는 없다.

황지우는 82년 저 문예지 다른 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라는 긴 에세이를 썼고, 거기 이런 구절을 적었다.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지 진단이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관여의 시도는 없지 않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고, 소통되지 않는 징후들만 ‘문학적으로’ 쌓여간다. 그것도 시절 탓일까. 시절 탓만일까.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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