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휴양지
존 패트릭 루이스 글,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ㆍ안인희 옮김
비룡소 발행ㆍ48쪽ㆍ1만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누군가 이렇게 탄식한다면 그것은 어떤 심각한 상실과 그 결핍에 대한 근심이기 쉽다. 당신은 무엇을 잃었을 때 이렇게 탄식하는가? ‘마지막 휴양지’는 주인공 화가가 다름 아닌 ‘상상력’을 잃고 한탄하는 독백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뒤이어, 헛헛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주인공, 짐을 꾸리다 말고 지도를 들여다보는 주인공을 차례차례 박스 컷 그림만으로 보여준다. 그 ‘상상력’을 찾으러 떠나는 모양이다.
주인공 화가는 자신의 빨간 자동차가 달리는 대로 달려간다. 마침내 도착한 ‘어딘지아무도몰라’ 마을의 바닷가 호텔 ‘마지막 휴양지Last Resort’는 그 외관만큼이나 심상찮은 일들로 그득하다. 문간에서 ‘실용 마법’을 읽는 소년, 프런트에서 손님을 맞는 앵무새, 저마다 비밀스럽고 기묘한 느낌을 주는 투숙객들…. 방명록 관리에 애쓰는 앵무새는 투숙객들이 제각기 뭔가 이상한 것을 찾고 있다며 주인공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무슨 이상한 것을 찾는 거죠, 순례자님?”
투숙객들은 허클베리 핀, 롱 존 실버, 인어 아가씨, 에드몽 당테스, 쥘 메그레, 생텍쥐페리, 나무 위의 남작 코지모, 허만 멜빌의 흰 고래, 에밀리 디킨슨, 라만차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같은 시와 소설의 주인공이거나 시인 작가들이다. 피터 로어 같은 배우도 있다. 이름만으로 이미 하나의 성채인 이들은 식당이나 해변 등 호텔 안팎에서 조우하지만 대체로 자기 이야기 속에 있으며, 주인공 화가의 시선으로 성글게 드라마를 엮어간다. 그래서 더욱 정교한 극사실주의 그림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시공간은 며칠간 외딴 곳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있을 때의 완벽한 판타지를 구현한다.
이 그림책은 이탈리아 그림책 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우연히 떠오른 이야기를 그림으로 먼저 그리고, 출판사가 글 작가에게 텍스트를 의뢰했다. 그림책을 만들 때 독자를 특정하면 오히려 상상력이 가동되지 않는다는 인노첸티는 과소비와 향락에 포획된 일상을 떠나 평화와 휴식이 있는 진정한 휴양지로서의 ‘문학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 당연히 아이들도 신실한 독자이기만 하다면 이 호텔 곳곳에 숨겨진, 오히려 어른 독자들은 놓치기 십상인, 문학 예술 코드의 소품을 뒤지고 찾으며 놀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결국 찾고자 하던 것을 찾는다. 기적을, 생명을, 행운을, 색깔을, 의미를, 사랑을, 모험을, 진실을, 영웅을, 용기를, 그리고 상상력을!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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