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예술본색
이영미 지음
우리교육 발행ㆍ296쪽ㆍ1만4,000원
대중예술, 한류 주역 찬사에도
‘예술 아닌 것’ 천대의식 여전
서민예술이자 지배예술 특성
실험보다 시장성 앞세우지만
“예술의 주인은 대중” 계기 돼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 ‘백조의 호수’, 웹툰 ‘미생’, 윤도현 밴드의 공연. 이중 예술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우리의 일상에서 예술은 주로 차별의 단어로 쓰인다. 예술이라 하면 칭찬 받고 평가 받고 지원 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예술이 아니라 할 때 그것은 굳이 들여다볼 가치가 없으면 지원은 얼토당토 않은, 시장의 논리에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할 것으로 치부된다.
예술의 종류가 본격예술과 대중예술로 세분화된 후에도 이 같은 ‘급 나누기’는 여전하다. 웹툰과 K팝이 한류의 중심이라 떠받들어지지만 한 꺼풀만 벗겨도 천대의식이 선연하다. 열애설이 난 아이돌은 팬들 앞에 사과할 것을 요구 받고, 웹툰 작가들은 정치적 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독자를 무시했다는 말을 듣는다. 대중예술이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분류에서 아직도 후자에 가깝다는 증거다.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의 ‘대중예술본색’은 대중예술 개론서이자 대중예술을 위한 해명이다. 마당극, 민중가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의 대중성을 연구해온 저자는 대중예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안에 대중의 취향과 욕망, 세계관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대중예술을 즐기고 동시에 욕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문체가 청소년 대상 강의 녹취록처럼 쉽고, 대중예술이란 화두도 새롭지 않기 때문에 얼핏 풀어 쓴 참고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는 대중예술을 지금 다시 논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고 말한다. “대중예술에 대한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는, 본격예술을 포함한 예술 전체에 대한 인식을 진전시키는 아주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중예술이란 장르를 따로 이야기하게 된 것, 그러니까 크든 작든 일련의 가치를 부여하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문화론이란 영역에서 대중예술을 다루기 시작했으며, 그것의 예술적ㆍ미적 특성을 연구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저자는 지식인들이 생산하고 향유하는 본격예술과 서민들이 만들고 소비하는 서민예술을 나눈 뒤 여기서 다시 지배력을 기준으로 서민예술을 분류한다. 즉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대중예술, 그 외의 것들은 하위 서민예술로 본다. 전자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후자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같은 구전가요와 구전설화 등이 포함된다.
이 같은 분류를 거치면 대중예술의 특성이 온전히 도드라진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대량으로 복제되는, 사람들의 안방과 스마트폰을 차지하고 앉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대중예술이다. “서민예술이자 지배예술, 이게 바로 대중예술의 독특한 특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서 이런 예술은 없었습니다.”
유례없는 것들의 운명이 늘 그렇듯, 대중예술이 걸어온 길도 험난하기 그지 없다. 1970년대만 해도 어린이날엔 만화책을 쌓아놓고 태우는 화형식이 연례행사였고, 그 뒤를 이어 컴퓨터, 게임, 웹툰이 차례로 각종 범죄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곤 했다.
대중예술이 늘 억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태생부터 대량소비를 전제로 하는 대중예술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상식과 대중의 욕망에 몸을 끼워 맞춰왔다. 다른 생각, 새로운 형식, 본질에 대한 탐구 따윈 시장성 앞에 간단히 무시되고 성욕, 식욕, 출세욕을 살살 건드리며 대중의 눈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대중예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저자는 그것을 “작가만 바라보던 눈을 비로소 수용자 대중으로” 돌리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중예술의 등장은 모든 예술의 주인이 창작자가 아닌 수용자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며, 예술이 박물관에 걸린 그림이 아닌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유희라는 자명한 진실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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