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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언덕 위의 삶

입력
2016.07.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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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 집에서 이사를 가야 한다. 일찍부터 이런 일에 대비해 열심히 집을 보러 다녔지만,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했다. 내가 집을 구하지 못한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꼭 이 동네에서 살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는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이곳이 내 정서에 잘 맞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직도 조합에서는 서울시장만 갈아치우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며 조합원들을 선동하기 때문에 불 보듯 뻔한 결과를 눈앞에 두고도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집을 수리해 세놓지도, 팔려고 하지도 않는다. 간간이 수리해 세놓는 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 무리를 해서라도 구입할 만한 집도, 세들 만한 집도 없는 상황에서 이사를 해야 하니 심란하지 그지없다. 16년 5개월. 한자리에서 살기에는 긴 세월이다. 그 동안 나는 가방 하나만 들고 미련 없이 이 집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영화 ‘37.5도’에서 베티 블루가 달랑 가방 하나만 들고 살던 집을 불살라 버리고 떠나는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거주지가 구질구질하다고 느끼는 내게 그보다 더 통쾌한 장면은 없었다. 그 동안 나의 살림은 전혀 늘지 않았고, 경제력 또한 늘지 않았다. 늘어난 거라곤 관절에 무리가 갈 정도로 무거운 나이뿐이다. 아직도 삶은 언덕을 향해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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