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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입력
2016.07.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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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급상승할 때 불평등 심화

트럼프ㆍ나향욱 등은 파시즘 징후

자유ㆍ평등 병행이 극단주의 막아

“누구도 다른 사람을 돈으로 살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구도 자기를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해서도 안 된다.…그와 같은 평등은 이론의 괴물이지 현실적으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참한 현실을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를 통제하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254년 전 펴낸 ‘사회계약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당시 그가 살던 서유럽에선 산업혁명에 따른 생산성의 비약으로 자본주의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자본주의는 극심한 불평등을 야기했다. 특권 귀족과 부르주아는 부를 독점하며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으나 노동자와 농민은 가난 탓에 몸이라도 팔아야 했다. “파리가 어리석은 인간들의 경탄을 자아낼수록, 우리는 내버려진 농촌, 망가진 논밭을 보고 눈물짓는다. 거리는 거지나 도둑이 된 불행한 시민들로 가득하다.”(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부자만이 더욱 부유해질 수 있는 불평등 사회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결국 반기를 들었다. 프랑스혁명이었다.

요즘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로봇기술 등을 토대로 소셜미디어, 공유경제와 같은 새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20대 젊은이가 일군 구글과 페이스북은 순식간에 수백조 원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창조’의 탈을 쓴 지식기반 노동이 생산하는 노동을 대체하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빈부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더욱이 경쟁적인 시장과 개인의 홀로서기를 최고선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무능 탓으로 돌리며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열심이다.

정치가 시장의 광기를 잠재우지 못하면 그 사회는 지속 가능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대화와 타협 대신 비이성적 힘에 의지하려는 극단주의가 발호하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와 불평등을 자양분 삼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돌풍을 일으킨 극우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진경준, 우병우, 나향욱 등에게서 보이는 타락하고 비뚤어진 엘리트주의 또한 일반 시민의 상식과 보편타당성을 짓뭉갰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징후로 읽힌다.

루소는 ‘에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고,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사회에 살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18세기 프랑스보다 더 나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의 불평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위 1%가 전체 부의 25.9%를, 상위 10%가 66%를 점한다(동국대 김낙년 교수). 극심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 구조에도 불구하고 서민 부담이 큰 간접세 비중이 매우 높고 복지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이다. 기득권층의 탐욕과 부패에 절망한 젊은 세대는 ‘헬조선’을 저주하며 “죽창을 달라”고 부르짖는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회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 고 이영희 선생은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 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라고 했다. 새와 마찬가지로 사회도 지속 가능한 체제를 유지하려면 신자유주의의 격랑 속에 실종된 견제와 균형, 공존의식을 복원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 함께 가야 할 소중한 가치이듯, 성장과 분배는 배타적이 아닌 상호 보완적 개념이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옹호함과 동시에 적정한 소득분배와 사회복지증진 의무를 국가에 부여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질서는 복지와 분배 정의를 배제하는 자유주의가 아니며 이를 포용하는 자유주의다. 보수와 진보는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부지런히 소통해야 한다. 서로 협력해 시장의 활력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건강하고 따뜻한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고 교정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래야 극단주의를 막을 수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고재학국장02] 고재학 논설위원 /2016-01-15(한국일보)/2016-01-15(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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