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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개ㆍ돼지의 나라, 사드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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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개ㆍ돼지의 나라, 사드를 품다

입력
2016.07.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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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껏해야 평범한 별에 딸린 왜소한 행성에 살고 있는 진화한 원숭이 족속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대단히 특별하다면 바로 그 때문이다.” 1988년 독일 슈피겔지와 인터뷰에서 스티븐 호킹이 한 말이다. 1988년이면 빅뱅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인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지 겨우 24년 지난 시점으로 우주의 나이가 얼마인지도 몰랐고 우주의 가속팽창을 발견하려면 아직 10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때였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량적인 과학이론으로서의 우주론이 등장한 것은 1917년이었다. 2년 전인 191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부합하는 새로운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새로 개발한 중무장 화기로 우주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현대 우주론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채 100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138억년에 달하는 우주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가 확정된 경북 성주 군민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가 확정된 경북 성주 군민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민중은 개ㆍ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어느 고위 공직자의 말을 듣고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가 개ㆍ돼지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나 석학들이 이 질문에 답을 내놓았겠지만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내 입장에서는 호킹의 1988년 인터뷰 내용도 하나의 단서가 아닐까 싶다. 호킹의 말을 좁게 해석해서 1917년의 아인슈타인 이전이나 태양중심설을 내놓았던 1543년의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는 우리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원과 본질에 대한 갈망, 이를 체계적으로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민중은 개ㆍ돼지”라는 말이 단순히 영화 속 대사의 인용일 뿐이거나 그 공직자 개인의 망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최대 현안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민중 개ㆍ돼지론’은 여지없이 관철된다. 국방부와 대다수 언론은 연일 사드의 전자파가 무해하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레이더 출력이나 방사 패턴 등 핵심 사항들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과연 전자파가 무해하면 만사형통인 것인가. 지역 주민들이 참외를 깎아 먹을 수 있으면 외국군대가 마음대로 온갖 무기를 들여와도 상관없는 것인가. “개ㆍ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 주면 된다”는 논리는 사드가 들어설 성주에도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은 일차적으로 당연히 충족돼야만 하는 조건일 뿐이다. 왜 그런 무기가 지금 여기 들어와야 하는지, 신무기 도입의 정치 외교적 군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한반도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등, 우리는 사드 배치와 관련된 근원적인 질문에도 관심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4일 “사드 배치에 따른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고 말했지만 과연 논쟁다운 논쟁을 하기나 했었는지 의문이다. 윗사람들이 알아서 다 결정했으니 너희는 그냥 그 결정을 군말 없이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 역시 주권자인 국민을 개나 돼지로밖에 생각하지 않은 처사이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오바마 미 대통령이 북핵문제 해결이나 북미관계 개선에 그렇게 미온적이었던 것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서의 북한이라는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었다. 성주 사드 배치 결정은 이런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었거나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더라면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사드를 배치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미국 대통령에게는 미국의 국익이 최우선이다. 그 어떤 혈맹도 국익에 우선하진 않는다. 한반도가 또다시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놀이터가 될까 봐 걱정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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