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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개저씨를 만들어 내는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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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개저씨를 만들어 내는 한국 사회

입력
2016.07.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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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안에 고릴라가 있다. 이 고릴라는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사회화다. 한국사회는 남자의 고릴라화를 자꾸만 부추긴다는 게 사회학자 오찬호의 지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남자 안에 고릴라가 있다. 이 고릴라는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사회화다. 한국사회는 남자의 고릴라화를 자꾸만 부추긴다는 게 사회학자 오찬호의 지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오찬호 지음

동양북스 발행ㆍ312쪽ㆍ1만4,500원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로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이 문장에서 홑따옴표는 ‘남자’에다 붙었지만, 정작 붙어야 할 곳은 ‘한국’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 것이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라는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일베, 메갈리안, 여성혐오, 미러링이니 하는 어리둥절한 단어들이 넘쳐난다. 사안 자체가 말에 말을 덧붙여 말 만들어내기 좋고, 홍해처럼 양편으로 갈라져 투석전 벌이기 좋은 소재니 전사들의 피는 더 뜨겁게 타오른다. 키보드 워리어들의 싸움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러니 이제 이런 책이 나올 때도 됐다. 부제가 더 노골적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크게 봐서 과도한 남성성의 무게에 시달리는 남성 역시 피해자’라는 식의 세심한 얘기는 잠시 접어두자. 이 참에 화끈하게 그 놈의 ‘남성성’이란 게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전제해두자면, 이미 많은 생물학자들이 남성에게 ‘고릴라 전략’을 포기하라고 권해왔다. 상대적으로 좁은 영역 안에서 모든 암컷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수컷 고릴라는 우락부락한 근육에 거대한 송곳니를 발달시키면서도 생식기 발달은 지지부진하다.

수컷끼리 경쟁을 위해 폭력성과 공격성은 크게 높였으되, 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나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쪽으로 전략을 짰다는 얘기인 셈이다.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대 이익을 내야 하는 진화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짐작 가능한 얘기이자, 여성혐오를 두고 ‘청년 루저’가 많이 거론되는 상황에 비춰보면 참으로 오묘한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문제는 인간은 고릴라를 뛰어넘어 사회적 협동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남자들 가슴 속엔 ‘고릴라의 꿈’이 로망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다음 문제는 그 로망, 마음 속에 고이 간직했으면 좋으련만 시시때때로 드러내면서 ‘그게 왜? 어쨌다고?’를 연발해댄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 남자를 분석하겠다는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남자의 형상은 딱 우락부락한 고릴라의 그것이다.

저자 오찬호는 일베 현상을 파헤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기업에 포획된 지식사회를 다룬 ‘진격의 대학교’(문학동네) 등을 써낸, ‘포복’이 장기인 사회학자다. 그다운 필체로 ‘고릴라들의 서식지’한국 사회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런 주제는 다루기 쉽지 않다. 남자에겐 배신자로, 여자에겐 위선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저자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남자’라는 확실한(!) 정체성 아래 이런저런 개인적 경험과 그럼에도 여전한 자신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하는 전략을 썼다.

책은 크게 남자, 아니 고릴라의 머리ㆍ가슴ㆍ어깨ㆍ등 4개 부위로 구성됐다. 각 부위별 제목은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 ‘나처럼 좋은 남자도 없어’, ‘남자로 살기 너무 어려워’, ‘내가 여자한테까지 무시당해야 돼?’다. 군대 얘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나. 워밍업쯤 된다. “나를 ‘일베’같은 쓰레기들하고 동급으로 취급하면 곤란하지” 싶었던 남자들이라면 2부부터 조금씩 조여 들어옴을 느낄 게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여성혐오를 몇몇 잘못된 사람들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해버린 뒤 자기는 괜찮은 남자라고 안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사회학자 오찬호는 여성혐오를 몇몇 잘못된 사람들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해버린 뒤 자기는 괜찮은 남자라고 안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김춘수의 시 ‘꽃’에 빗대 여자들이 마침내 아저씨들을 ‘개저씨’라 부르게 된 것을 혁명이라 칭한다. “똥을 이제야 똥이라 부른 셈”이어서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같은 말과는 다르다. “이 용어들은 약자들을 위한 강자의 낙인이지만 개저씨는 정반대”라서다. 한술 더 뜬다. 남자들이여 ‘개저씨’란 말에 분노하지 말라. “그나마 남은 여정에 자기 멋대로 살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입었으니 말이다. 진짜 불쌍한 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살다 간 이들이다.

명절 때나 야외에 놀러 가서 요리하며 으스대는 것도 그렇다. “여학생은 MT 가서 요리하는 남자의 몸에서 ‘보아라! 나는 요리도 하는 남자다’라는 외침이 들린다고 했다.” 이 여학생은 이런 말도 했다. “여자들은 객관적으로 생색을 낼 상황이라도 내색을 하지 않는 게 바로 요리라는 노동인데, 남자들은 그 노동을 아주 잠시 보여줘도 상징적인 가치를 다 가져가니 신기한 거죠.”

추행과 강간을 야기한다는 ‘야한 여자’도 빠지지 않는다. “개도 어떻게 훈련 받았는 지에 따라 평소에 환장하는 ‘뼈다귀’ 앞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데,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남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여자가 야해서 성범죄가 일어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여성들을 체포해 투옥시킬 경찰, 판ㆍ검사들 고추부터 자르는 것이라던 버트런드 러셀의 블랙 유머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일베에 이어 대한민국 남성 분석 보고서를 낸 사회학자 오찬호. 대구에서 나고 자란 진골(?) 남성이다. 동양북스 제공
일베에 이어 대한민국 남성 분석 보고서를 낸 사회학자 오찬호. 대구에서 나고 자란 진골(?) 남성이다. 동양북스 제공

주부들이 아침마다 퍼질러 앉아 본다고 욕먹는 ‘막장 드라마’에 대해서도 이런 해석을 내놓는다. “비판의 불평등이 여지 없이 드러난다. 사실 똑같다. 무엇과? ‘직장인들의 밤’과 말이다. 직장인들의 ‘밤 문화’는 아침 드라마보다 몇 배는 더 막장이고 게다가 ‘리얼’아닌가.” 막장을 ‘저지르는’ 이들이 막장을 ‘넘겨 보는’ 이들을 흉보다니. 묵직한 것만은 아니다. 왜 모든 식당, 술집의 종업원은 ‘이모’라 불리는지 같은 가벼운 퀴즈도 있다.

좀 거창하게 말해 독일의 과거사 처리가 칭찬받는 이유는 ‘집단적 책임’을 깔끔하게 인정해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일부 나쁜 녀석들이, 어이없게 사고를 친 게 아니라, 우리도 거기에 직ㆍ간접으로 발을 담갔다는 고백이다. “왜 나를 일베 따위와…” “메갈이나 일베나…”. 으르렁대기보다 왜 저리 화를 내는지, 그게 혹시 내가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로 살아왔기 때문은 아닌지, 한 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시작은 충분하다. 전쟁하자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살자는 얘기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기생충 학자 서민은 이걸 한 문장으로 이렇게 요약했다. “좋은 남편이 되게 해줬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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