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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만난 최초의 올림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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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만난 최초의 올림픽은?

입력
2016.07.2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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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스포츠기자협회의 공동 창립자이자 초대 회장인 프란츠 레셀. 레셀은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럭비 선수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출처=IOC 홈페이지
국제스포츠기자협회의 공동 창립자이자 초대 회장인 프란츠 레셀. 레셀은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럭비 선수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출처=IOC 홈페이지

1924년에 개최된 파리 올림픽은 44개국이 출전해 비약적인 양적 도약을 이뤘다. 선수단 규모도 앞선 대회 때보다 400여명이 많은 3,089명에 달했다. 직전 대회인 1920년 벨기에 앤트워프 올림픽에 참가한 나라가 29개국이었는데 이보다 15개국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림픽을 취재하기 위해 1,000명이 넘는 기자들도 파리로 모여들었다. 미디어와 올림픽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때, 각국 기자들의 취재 협력을 위한 국제스포츠기자협회(AIPS)가 출범했다.

라디오 중계가 나오기까지 올림픽 소식을 전하는 주된 수단 중 하나가 엽서였다. 출처=IOC 홈페이지
라디오 중계가 나오기까지 올림픽 소식을 전하는 주된 수단 중 하나가 엽서였다. 출처=IOC 홈페이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올림픽 중계방송이 등장한 것도 파리 올림픽부터다. 1924년 올림픽을 1년 앞두고 1923년에 설립된 ‘라디오 파리’가 실시간 올림픽 경기 해설을 선보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텔레비전 중계가 등장했지만, 단 25개의 정해진 방에서만 시청해야 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각 개인의 집에서도 TV를 통해 올림픽 방송을 볼 수 있게 됐다. 파리 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핀란드 출신의 파보 누르미다. 누르미는 이 대회서만 금메달 5개를 목에 거는 등 올림픽 3개 대회를 뛰는 동안 모두 9번이나 시상대 맨 위를 점령했다. 이어 영화 ‘타잔’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할리우드 스타 조니 와이즈뮬러(미국)가 수영에서 금메달 3개를 따냈다. 와이즈뮬러는 다음 대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수영에서도 금메달 2개를 더 손에 넣었다.

정진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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