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서 남북에 극단적 차별
시대 동떨어진 하드 파워 앞세워
남남갈등 노린 감정적 대응은
국내 반대론자 입지까지 좁혀
北에 대한 과도한 친밀감이
되레 '북핵 중국 책임론' 부각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전방위 압박에 나선 중국이 ‘신형대국’에 걸맞지 않은 ‘소국(小國)외교’로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오만과 결례의 시위성 외교행보가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반중(反中) 감정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폐막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중국이 남과 북을 상대로 보인 외교행태가 무엇보다 중국 스스로의 명분과 신뢰를 깎은 ‘하수(下手)’라는 평가가 많다. 전례 없이 한국 취재진에게 공개한 북중회담에선 과도한 친밀감을, 반대로 한중회담에선 손사래를 치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연출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언동은 한국 여론을 겨냥한 과시성 행보라는 게 확연했다. 이는 ‘사드 배치 결정이 중국의 보복과 대북제재 공조에 균열을 초래할 것’이란 국내의 사드 배치 반대여론을 부채질하려는 계산이 깔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남남갈등’을 노린 중국의 노골적 행태는 반(反) 사드를 주장하는 인사들에게조차 ‘국민적 자존심’을 건드린 결과를 낳고 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해온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발할 만한 이유가 분명 있지만, 한국을 상대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드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불만과 우려가 합당한 측면이 있지만, 중국의 감정적 대응이 되레 주변국의 민족주의만 부풀린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본보 인터뷰에서 “우리 외교부 장관이 말할 때, 중국 외교 부장이 손사래 치며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한없는 울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왕이 부장의 행보가 오히려 국내 사드 배치 반대론자들의 입지를 좁혀 놓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사드 반대가 마치 중국의 겁박에 비겁하게 굴복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조선말 지어진 ‘독립문’이 왜 일제 시대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는지 중국은 깨달아야 한다”며 중국의 반중 정서 자극을 우려했다.
특히 보수 진영이 느끼는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중국의 행태에서 참담함을 느꼈다” 며 “이제 와서 사드 배치를 철회하면 더 큰 수모를 겪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에 당당하게 대응해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을 감싸는 중국의 행태도 ‘북핵의 중국 책임론’을 더욱 부각시키는 대목이다. 북핵 문제의 배경을 놓고 “중국이 회초리를 들지 않고 방관해 북핵을 키웠다”는 미국 측 주장과 “미국이 대화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중국 주장이 맞서 왔다. 그러나 북한이 이젠 중국의 6자 회담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핵 보유국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기꺼이 북한과 손을 잡는다면 북핵 책임이 결국 중국에 있다는 비판을 비켜가기 어렵다. 이는 중국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 소홀로 이어져, 국제사회에서 G2(주요 2개국) 역할을 내세워온 자신들의 명분도 실추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외교적 결례는 상대를 힘으로 겁박하는 ‘하드 파워’ 대신 친근한 매력으로 신뢰를 쌓는 ‘소프트 파워’가 중요한 21세기 외교전과도 동떨어져 있다. 더욱이 아시아에서 중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의 행보와는 뚜렷이 대비된다. 버락 오마바 미 대통령이 전쟁 상대였던 베트남을 지난 5월 방문, 저렴한 대중식당에서 식사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 베트남 국민의 환심을 산 것도 ‘소프트 파워’를 중시하는 미국 외교의 일단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가 아시아 패권 다툼에서 벌어지는 대중국 견제용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미국의 세련된 외교전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 분쟁을 두고 일부 친중 국가를 제외하고 아세안 지역 일대에서 반중 정서가 들끓는 것도 중국의 고압적 외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이런 외교가 지속된다면 결국 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중 패권 다툼에서 중국의 외연 축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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