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소득심사에 집단대출 급증
내년부터 74만 가구 입주 쏟아져
집값 하락하면 대출부실 우려
전문가 “DTI 직접 규제해야 효과”
지난해 말 김모(33)씨는 부산에서 분양한 한 아파트에 청약을 넣어 당첨됐다. 청약 경쟁률이 치열해 당첨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김씨는 당첨 소식에 기뻐할 새도 없이 곧장 고민에 빠졌다.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터라 별다른 소득원이 없었던 만큼 은행에서 중도금대출을 받는 게 어려울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김씨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담당 은행원은 배우자의 소득증명 서류만 제출해도 김씨가 소득이 있는 걸로 인정돼 대출받는데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김씨는 부인의 원천징수영수증을 은행에 제출하고 분양가의 60%를 대출받았다.
앞으로 김씨의 사례처럼 제대로 된 소득심사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던 아파트 집단대출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아파트 집단대출 급증세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정밀 분석에 들어간 금융당국이 집단대출에도 소득심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은행들도 입주물량이 쏟아지는 내년부터 집단대출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자체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시중은행을 상대로 집단대출 현황 자료를 수집해 정밀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제출한 자료를 기초로 지역별 집단대출 총부채상환비율(DTI) 수치를 처음으로 산출할 예정이다. 집단대출이 소득심사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는 만큼 대출자의 소득 수준을 웃도는 위험 대출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취지에서다. 당국은 일단 집단대출에 DTI와 같은 직접 대출 규제는 적용하지 않을 계획이지만, 지금보다 은행들의 소득심사가 강화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 2014년에도 은행들에 공문을 보내 집단대출 때 소득 파악을 강화하라고 지시했지만 은행들의 소득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져 부적격 대출자를 걸러내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은행이 대출자의 상환심사를 깐깐히 하는 건 필수”라고 말했다.
그간 집단대출 실적 늘리기에 열을 올렸던 은행들도 부적격 대출자를 걸러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 최근 분양시장 호황이 이어지자 매매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무분별하게 아파트 집단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아 입주물량이 쏟아지는 내년부터 대출 부실 등의 문제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부터 2년간 전국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74만가구에 육박한다. 지난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물량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집단대출을 받은 대출자를 살펴보니 실수요자보다 매매차익을 노리고 5~6군데씩 청약을 넣은 투자자들이 훨씬 많았다”며 “입주물량이 쏟아지는 내년부터 주택 공급과잉으로 집값이 하락하면 대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소득심사를 더 강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에선 은행 공동으로 집단대출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만큼 조만간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집단대출에 DTI와 같은 직접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한 부적격 대출자를 걸러내는 등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은행들이 소득심사를 강화해도 직접적인 규제 없이는 은행들이 분양 받은 사람에게 대출을 거절할 명분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집단대출에 대해 직접적인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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