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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첫 출전한 대회는?

입력
2016.07.2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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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LA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김은배(왼쪽)와 권태하. 김은배는 6위, 권태하는 9위를 차지했다. 대한체육회 제공
1932년 LA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김은배(왼쪽)와 권태하. 김은배는 6위, 권태하는 9위를 차지했다. 대한체육회 제공

1900년부터 1928년까지 7차례 열린 올림픽은 ‘고무줄’ 일정 속에 치러졌다. 188일간 대회를 진행한 1908년 런던 올림픽이 최장 대회로 남아있다. 그나마 ‘효율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했다는 1912년 스톡홀름대회가 79일간 진행될 정도였다. 지금처럼 16일로 굳어진 대회는 1932년 LA올림픽이다. 이후 올림픽 기간은 15일에서 최대 18일까지로 정해졌다. 경기가 끝나고 입상한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목에 걸고 국기를 바라보는 장면 역시 이때부터 시작됐다.

미국의 에디 톨런은 남자 100m, 2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톨런은 은메달을 딴 랠프 메칼프와 똑같은 10.38초의 기록으로 100m 결승선을 통과했으나 사진 판독 끝에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출처=IOC 홈페이지
미국의 에디 톨런은 남자 100m, 2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톨런은 은메달을 딴 랠프 메칼프와 똑같은 10.38초의 기록으로 100m 결승선을 통과했으나 사진 판독 끝에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출처=IOC 홈페이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대공황과 열악했던 로스앤젤레스의 접근성 때문에 참가 선수는 이전 대회였던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의 2,883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32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대회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한국인이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일본의 식민지 상태여서 일본 대표로 선발돼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마라톤의 김은배와 권태하, 그리고 복싱의 황을수가 그 주인공이다. 김은배와 권태하는 마라톤에서 각각 6위와 9위의 성적을 올렸다.

정진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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