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충격적 증오범죄가 발생하면서 일본의 안전 사회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와는 관련이 없지만 무방비 상태의 취약계층에 대한 무차별 살인이란 점에서 일본도 더 이상 폭력ㆍ살상의 예외지역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일본에서는 촘촘한 사회안전망과 낮은 총기소지율로 인해 그 동안 범죄율이 낮았다”며 “주민끼리 서로 잘 알고 유대하는 특유의 공동체문화도 범죄발생을 억제하는 기능을 했지만 이제는 그 특징이 붕괴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본에선 1995년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때 13명이 숨진 이후 강력사건이 발생해도 대부분 희생자는 한자리 수에 머물렀다.
충격적 사건을 두고 일본 사회에서는 백가쟁명식 진단이 나오고 있다. 범인 우에마쓰 사토시(植松聖ㆍ26)가 올 2월 정신보건법상 ‘조치입원’에 따라 강제 입원됐다가 12일만에 퇴원한 뒤로는 무방비 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선 제도상 허점이 지적되고 있다. 약물검사 음성반응이 나온 뒤 퇴원했지만 본인 주장대로 부모와 동거여부 등의 후속 확인과정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조치입원 조치가 범죄예방이 아닌 정신장애인에 대한 의료재활 목적인데다 장기입원은 인권침해 우려로 후속 강제조항이 없다. 일각에선 장애인 및 노인요양시설의 고질적인 격무와 저임금을 해결하지 않는 한 제2의 참사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 내 장애인시설들은 감시카메라를 정비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직원 스트레스 검사를 실시하거나 출입문을 봉쇄하는 등의 분주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시설이 지역사회와 분리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정신보건복지연합회 측은 “사건 가해자가 정신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점도 장애인 전체의 차별이나 편견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범인 우에마쓰는 범행 당일 여성숙소와 남성숙소를 차례로 돌아다니며 복수의 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에 집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장애인시설에 근무할 당시에도 간호사에게 “장애인을 안락사시키거나 살처분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는 “중복장애인을 도와주려 했고 후회도 반성도 하지 않는다. 갑자기 이별을 하게 해 유족들에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하는 등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