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26일 민주당 188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소감을 ‘유리천장’과 ‘역사’라는 단어로 압축시켰다. 100년 전만 해도 여성의 참정권이 부정됐고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좌절해온 미국 여성운동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됐다는 것이다.
클린턴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으로도 통한다. 변호사→퍼스트레이디→상원의원→국무장관이라는 화려한 이력과 함께 8년 전 대선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벽을 넘지 못하긴 했지만 한차례 대권 도전장을 내민 적도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4년간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대선 주자로서의 '내공'을 쌓은데다 오바마 대통령의 적극저기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그의 두 번째 도전에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클린턴 후보가 최종 목표인 대선 승리를 달성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불신(不信)과 수구(守舊)’의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 특히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2012년 리비아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을 무장세력이 기습 공격해 주 리비아 미국 대사 등이 목숨을 잃은 벵가지 사건과 국무장관이면서도 기밀문서 등 공문서를 국무부 이메일이 아닌 사설 이메일로 주고받은 이메일 스캔들은 최대 약점이다. 유능하고 안정돼 있지만 식상하다는 이미지도 문제다. 공교롭게도 후보 지명에 맞춰 공개된 갤럽 여론조사에 클린턴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는 무려 57%로 나타났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터진 민주당 지도부의 편파 경선 파문과 그에 따른 당내 분란을 수습하는 일도 시급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조 바이든 부통령,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버몬트) 상원의원 등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적극 나선 덕분에 전당대회 둘째 날부터는 외견상 화합과 통합 분위기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샌더스 지지자 가운데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를 찍겠다는 비율이 60%대에 머물고 있는데, 이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통상정책, 월가 대형은행 개혁 등 오바마 대통령의 기존 정책을 어느 수준에서 승계할 것이냐에 대한 정교한 전략도 필요하다. 정책 승계의 폭이 클수록 오바마 대통령 지지층은 흡수하겠지만, 샌더스 지지자들의 이탈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면 단절하는 모습을 보이면, 임기 말인데도 여론조사 인기도가 50%를 넘는 오바마 대통령의 후광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오바마의 계승자를 자처하면서도 개별 사안에 따라 차별화를 하는 전략이 불가피하다.
전술적으로는 지난주 전당대회 효과에 힘입어 지지율을 역전시킨 ‘대 트럼프’저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공화당 트럼프 후보 지지율은 전당대회 이전에는 추세적으로 클린턴 후보에 뒤졌으나, 전당대회(7월18~21일) 기간 중 이뤄진 주요 3개 여론조사에서 모두 2~4% 포인트 차로 앞서기 시작했다.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뼈아픈 역전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들이 나온다.
물론 전반적 구도는 클린턴 후보가 앞서는 형국이라는 분석이 많다. 공화ㆍ민주당의 부통령 후보 내정자를 정확하게 맞힌 예측시장도 여전히 클린턴과 트럼프의 당선 확률을 65대35로 평가하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전당대회 이후 평균 5%포인트 가량의 지지율 상승이 관측되고 있는 만큼 민주당 전당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다면 클린턴 진영이 다시 승기를 잡을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필라델피아=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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