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일부 소란과 행사장 주변 시위가 계속됐지만 26일 민주당의 이틀째 전당대회는 전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상태에서 진행됐다. 연단에 오른 이들마다 ‘함께하면 더 위대하다’며 단합을 강조한 탓이지만, 가장 큰 힘을 보탠 이는 단연 경선 패배자인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이었다.
샌더스의 힘은 이날 오후 후보 지명을 위한 호명 투표(롤콜)에서 정점에 달했다. 50개 주와 해외 미국령 등 총 57개 지역 중 56곳의 결과가 발표되고 고향 버몬트 주의 경선 결과만 남았을 때 샌더스 의원이 마이크를 넘겨 받았다. 미소와 굳은 표정을 번갈아 짓던 샌더스 의원은 “전당대회 절차 규정에 관한 행사를 중단하고 클린턴을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하자고 제안한다”고 밝혔다. 극소수 지지자들이 ‘사기 선거’라고 씌어진 종이를 들어 보이며 불복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대다수 샌더스 지지자들이 함께 쏟아낸 환호와 함성에 묻혔다.
이로써 과거의 반목은 용광로 안으로 녹아버린 듯 했다. 샌더스 의원의 깨끗한 승복은 민주당 전당대회의 오랜 전통이며, 클린턴 후보도 8년 전 당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같은 방식으로 영광을 돌린 적이 있다. 샌더스 의원의 제안에 사회자는 표결 절차를 중단하고 즉시 클린턴을 대선후보로 지명한다고 선언했다.
지명 절차 이후는 지지연사들이 등장해 일사천리로 클린턴 후보와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쏟아냈다.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고, 거만하고, 숨길게 많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시키려는 클린턴 진영의 이미지 변신 전략인데, 마침표는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찍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71년 첫 만남 이후 40년이 훨씬 넘게 함께 지내는 동안 벌어진 수많은 일화를 소개한 뒤, 아내는 언제나 변화를 추구했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긴 연설이 끝났을 때 필라델피아의 밤은 10시48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모두들 ‘웰스파고 센터’의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는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느닷없이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등장, “미국 여성의 숙원을 풀어줄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소개한다”고 외쳤다. 이어 연단 뒷편 전광판에 역대 44명의 미국 대통령 얼굴이 연속적으로 지나갔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까지 나온 뒤 44명의 사진은 모자이크로 축소돼 전광판을 채웠다. 이윽고 모자이크가 ‘쨍그렁’ 소리와 함께 깨지면서 이날의 주인공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나왔다. 그는 “오늘 미국 역사상 유리천장에 가장 큰 금이 났다. 오늘은 여러분의 승리이고, 여러분의 영광된 밤”이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힐러리 클린턴 후보 등장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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