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는 단체 구기 종목에서 따는 메달도 총합에서는 1개로 친다. 축구(11명) 야구(9명) 핸드볼(7명) 배구(6명) 등 여러 명이 모여 메달을 합작했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체 구기 메달은 조금 특별하다. ‘공은 둥글다’고 하는 것처럼 의외성이 많고 개인종목에서 볼 수 없는 끈끈한 조직력과 협동심, 희생정신이 감동을 배가시킨다. 최근 올림픽에서도 2004 아테네 여자핸드볼의 우생순, 2008 베이징의 야구 퍼펙트 우승, 2012 런던 남자축구의 동메달 등이 심금을 울렸다. 리우에서는 또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까.
아테네 우생순
한국과 덴마크의 여자핸드볼 결승은 대회 10대 명승부에 선정될 정도로 접전이었다. 상대에게 유리한 편파 판정 등 악재에도 한국은 2차 연장까지 가며 선전했지만 결국 승부던지기에서 무릎을 꿇었다. 당시 임영철(56) 대표팀 감독은 “패인은 기술과 체력이 뒤져서가 아니라 덴마크 국민의 열렬한 응원이었다”며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투혼의 은메달은 나중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베이징 찬란한 열흘
8월 13일 첫 경기부터 8월 23일 결승전까지. 한국 야구는 열흘짜리 금메달 드라마를 썼다. 야구 종주국 미국은 물론 아마추어 세계 최강 쿠바,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연파하며 9전 전승으로 완벽한 우승을 일궈냈다. 한국 야구를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시킨 쾌거였다. 올해 역대 최다 관중인 860만 돌파를 노리는 프로야구 인기몰이의 촉매가 바로 베이징 금메달이었다.
런던 다시 한 번 대한민국
2002년 4강의 주역 홍명보(47ㆍ항저우 그린타운 감독)가 사령탑으로 변신해 꼭 10년 만에 한국 축구에 사상 첫 동메달을 안겼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라이벌 일본을 제압해 더 값졌다. 독도 문제를 놓고 한일 양국이 첨예하게 갈등하던 시기였는데 미드필더 박종우(27ㆍ알 자지라)가 3위를 확정한 뒤 관중이 건넨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 국제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무명에 가깝던 박종우는 ‘독립투사’란 별명을 얻었으나 한동안 곤혹스런 지경에 처했다.
리우에서는?
여자핸드볼이 기적의 재연을 꿈꾼다.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에서 각각 은메달, 동메달을 딴 ‘독사’ 임영철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임 감독은 1996 애틀랜타 은, 2000 시드니 4위, 2004 아테네 은, 2008 베이징 동메달을 끝으로 은퇴했던 제자 오영란(44)을 다시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오영란은 리우올림픽 한국 선수단 최고령 선수기도 하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다. 일구지 못한 금메달이다. 그들은 “이제는 금메달을 딸 차례다. 리우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겠다”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태용(46) 감독이 이끄는 남자축구도 4년 전 동메달 신화를 다시 쓸 각오다. 런던 대회에 비해 선수들의 이름값이 떨어져 ‘골짜기 세대’라는 오명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이를 악문다.
여자배구는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첫 메달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동메달) 이후 40년 만에 메달을 노린다. 특히 4년 전 런던올림픽 3ㆍ4위전에서 일본에 져, 4위에 그친 아쉬움을 되갚아야 한다. ‘여자 배구의 리오넬 메시’라 불리는 김연경(28ㆍ페네르바체)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절실함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다부진 출사표를 던졌다.
여자하키도 1996년 애틀랜타 은메달 이후 20년 만에 순위권에 도전한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5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자신감이 큰 무기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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