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피해자 지원재단이 28일 공식 출범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내달 중 10억엔(약 107억원)을 출연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집권 자민당내에선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에 대한 구체적 보장이 없는 한 먼저 돈을 지원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약속한 출연금을 재단출범과 때를 맞춰 제공한 뒤 한국 정부를 압박해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출연금 제공의 타이밍과 관련한 물밑협상에서 한국 측에 ‘성의있는’ 반대급부를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朝日)신문은 27일 “일본 정부가 내달중 10억엔을 출자할 방침을 굳혔다”며 “재단설립과 거의 같은 시기에 피해자 지원에 나서는 게 한일 합의 이행을 위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교도(共同)통신도 “아베 정부가 소녀상이 이전되기 전에 10억엔을 출자하는 방향으로 검토중”이라며 한국측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보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복수의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일본 측에선 위안부재단과 관련해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이 한국 정부와의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야치 국장은 한국에서 재단이 발족한 뒤 양국 여론을 상호 탐색하면서 돈을 전달할 최적의 타이밍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선제적으로 출자 조치를 취해 한국 정부가 화답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정부가 “재단설립 단계부터 소녀상을 거론하면 한국내 여론이 반발해 합의가 손상된다”며 일본에 협조를 당부하는 의사를 비공식 전달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일본 언론은 동북아 정세 변화가 아베 정부의 한일관계 기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도 하고 있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이나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더 커지면서 우선 한국과의 신뢰 회복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베 정부내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연금 제공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를 비판하는 여론이 가시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NHK는 “소녀상 이전에 대해 한국 측이 대응을 하지 않고 있어 일본 정부는 한국에 전향적인 움직임을 촉구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특히 아베 정부는 지난 15일 몽골에서 열린 아셈회의 당시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한 사실상의 확답을 받으려 했지만 무산됐다는 평가다.
더욱이 일본으로선 10억엔의 용도와 관련, 한국 측이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할 경우 상징적인 ‘배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과 모순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돈이 전달된 순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으로 끝났다며 소녀상 이전문제를 공론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재단출범을 계기로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대립이 오히려 심화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내달 6일 호주 시드니에선 ‘평화의 소녀상’ 건립제막식이 예정된 가운데 현지 교민사회에서 한일 분쟁이 노골화되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10억엔은 한일합의의 상징적 효과를 감안해 단번에 지급되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소녀상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결노력이 나오지 않을 경우 더 어려운 국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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