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장관 대화서 소외 혼자 식사
케리도 본체만체 건너 뛰어
국제적 고립 상황 그대로 드러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만찬 행사에서 북한이 처한 국제적 고립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27개국 외교장관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상황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혼자 식사만 하다 자리를 떴다.
중국과 북한 대표단이 묵고 있는 라오스 비엔티안의 돈찬팰리스 호텔에서 25일 열린 만찬에서 리 외무상 왼편에는 파키스탄, 오른편에는 파푸아뉴기니의 장관이 자리를 잡았다. 다른 장관들이 자리를 넘나들며 인사를 나누는 동안 리 외무상은 행사 내내 자리를 혼자 지켰다. 옆 자리 장관들과도 별다른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영어에 능통한 엘리트 외교관 출신인 리 외무상이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이전 외무상들과 달리, 이번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사교에 나설 것이란 예상과는 다른 소극적인 태도였다. 디귿자(ㄷ) 모양의 만찬장에서 리 외무상과 20m 떨어진 자리에 앉은 윤병세 외교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담소를 나누며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였다.
케리 장관은 만찬장을 돌아다니며 각국 장관들과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예 리 외무상을 ‘투명인간’으로 대우했다. 파푸아뉴기니 장관과 인사한 케리 장관은 그 다음 차례인 리 외무상은 본체만체 건너 뛰고 파키스탄 장관과 얘기를 나눈 것이다.
만찬장에서 케리 장관에게 외면 받았던 리 외무상은 26일 ARF 본회의 연설에선 한반도 정세 악화를 미국의 적대시 정책 탓으로 돌리는 북한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그는 8월에 치러지는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해 “8월 조선반도 정세가 통제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면 그 책임은 핵전략자산을 조선반도에 끌어들인 측 즉 공화국의 최고존엄을 건드려 먼저 선전포고를 미국이 전적으로 지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리 외무상은 ARF 회의 도중 이례적으로 기자회견도 열고 “(미국이) 인권문제를 걸고 우리 최고존엄까지 모독함으로써 최대의 적대행위를 감행하는 데 이르렀다. 우리와 공존을 거부하고 모든 대화의 문을 닫아 맨다는 선전포고와 같다”며 미 행정부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인권 유린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올린 데 대해 강한 반발심을 드러냈다. 그는 “조선 반도 비핵화 자체가 미국에 의해 하늘로 날아갔다”며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모든 무장장비와 군대를 철수해야한다”며 “이것이 유일한 방도”라며 북한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비엔티안(라오스)=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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