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계 모임이나 두레야말로 ‘사회적경제’의 전형입니다.”
김기태(47)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2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사회적경제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19대 국회 때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해 같은 당 의원들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공격한 데 대한 항변이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사회적 경제조직이라는 큰 틀로 아우르고 정부가 이들 조직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이 법안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고, 현 정부의 국정 기본원칙인 자유와 창의가 저해될 수 있다는 누명을 쓰고 처리되지 못했다.
김 소장은 “제주도 수눌음이라는 전통을 보면 마을 공동체가 일종의 조합비를 걷어서 말 방앗간을 만들고, 조합비를 낸 사람은 1전, 조합비를 안 낸 사람은 2전을 내야 방앗간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며 “이렇게 모인 돈으로 방앗간 개보수를 하는 등 오늘날 협동조합처럼 마을 방앗간을 운영했으며 이런 전통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황해도 신림계(18세기 마을에 큰불이 나자 나무를 심기 위해 만든 계모임) ▦개성 송방(17, 18세기 개성상인들이 상권관리를 위해 전국 각지에 세운 지역거점) 등 사회적경제의 형태를 띄는 풍습과 역사적 사실을 줄줄이 나열했다. 김 소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협동과 연대의 전통을 다시 복원하자는 것인데, 이를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공격하고 있으니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가톨릭농민회 교육부장과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지역농업네트워크 전무 등으로 일하며 농민들을 위해 계속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오랜 노력 끝에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라는 과실도 맛봤다. 협동조합기본법은 5인 이상 조합원을 모으면 누구나 금융ㆍ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3억원 이상이던 출자금 제한을 없애고, 200명 이상이던 설립 동의자를 5명으로 줄이는 등 설립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사회적경제 구축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지만 그는 여전히 이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다. 김 소장은 “상법상 협동조합이 회사로 분류되지 않아 조합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농업인이 10분의 1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법인(회사)은 농지를 소유할 수 있지만, 100% 농민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의 경우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다. 그는 “상법상 회사분류에 협동조합이라는 단어 하나만 포함해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며 “협동조합에 특별한 혜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일반 회사와 동일한 운영이 가능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협동조합기본법의 취지가 협동조합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사회적경제기본법은 법인격간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는 관련 법이 없어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만들어 사회적경제를 지원하고 있다”며 “지원과 운영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경제기본법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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