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공화당의 내분을 지켜보며 ‘우리는 다를 것’이라고 조롱했던 미국 민주당. 그 민주당이 전당대회 첫날인 25일 더 심한 내홍(內訌)에 휩싸였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편파 경선관리’이메일 폭로에 분노한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 지지자들이 전당대회장인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 ‘웰스파고 센터’ 안팎에서 종일 시위와 소동을 피웠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내내 샌더스 지지자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도나 브라질 임시 DNC 의장이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전날 사퇴 의사를 밝힌 데비 와서먼 슐츠 전 의장 대신 스테파니 롤링스 볼티모어 시장이 오후 5시 개회를 선언토록 했다. 슐츠 의장은 끝까지 개회 선언을 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DNC는 찬조 연사들의 역할도 긴급하게 조정, 단합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내는데 주력했다. 유머와 순발력을 갖춘 코미디 배우 사라 실버만과 앨 프랑켄(미네소타) 상원의원을 동시 투입한 게 대표적이다. 실버만은 미 연예계에서 가장 유명한 샌더스 지지자이며, 코미디 배우 출신인 프랑켄 의원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지지자다.
실버만은 단독 발언 기회를 얻어 “아쉽지만 클린턴 전 장관에 투표하자”고 같은 지지자들을 달랬다. 프랑켄 의원은 “우리 두 사람이 험한 상황에서 양쪽 가교가 되자”고 제의한 뒤, 대기 중이던 원로 가수 폴 사이먼을 초대해 세계적 히트 곡 ‘험한 세상에 다리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부르게 했다.
밤 10시 이후에는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엘리자베스 워렌(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샌더스 의원 등 거물급 인사가 잇따라 등장했다. 이들의 감동적 연설로 샌더스 진영의 분노가 누그러진 듯했으나 완전히 돌려놓지는 못했다. 워렌 의원이 ‘클린턴은 유일한 대통령 감”이라고 치켜 세우자, 샌더스 지지자 일부는 연설 도중인데도 “우리는 버니를 원한다”고 외쳤다. 샌더스 의원이 마지막 연사로 나서 “경선 결과가 나도 아쉽지만, 나는 클린턴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샌더스 의원 이름이 적힌 손팻말을 든 채 일어나 불복하는 지지자들이 목격됐다.
행사 초반은 거의 아수라장이었다. 롤링스 시장의 개막선언 목소리가 묻힐 정도로 환호와 여유가 뒤섞였고 축하기도를 하던 신시아 해일 목사는 계속되는 구호에 15초 동안 기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연사들의 입에서 ‘힐러리’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야유를 퍼붓고,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면서 “샌더스”를 연호했다. 샌더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환태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를 주장하는 손팻말도 상당했다.
이날 낮에는 더 큰 혼란이 벌어졌다. 한낮 기온이 36도를 넘어섰는데도 400여 명의 샌더스 지지자들이 시내 중심가에서 대회장까지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대회장 주변에 설치된 2m 높이 철제 담장을 넘으려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샌더스 의원이 시청 앞에서 “우리는 역사를 이뤘다. 트럼프를 막는 게 더 중요하며, 그래서 클린턴을 지지해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오히려 야유를 받았다.
한편 클린턴 캠프는 편파 경선과 직접 관련이 없음을 강조하는 한편, 이메일 해킹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원하기 위한 러시아 정부의 공작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DNC의 편파 경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조철환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