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개봉동 4층짜리 빌라 옥상에 장모(52)씨가 한쪽 팔에는 세 살배기 딸을 안고 다른 팔로는 난간을 붙잡은 채 위태롭게 매달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다급히 구조망과 안전매트를 설치했지만 오히려 흥분한 장씨는 “매트가 없는 곳으로 뛰어내리겠다”고 소리쳤다. 옥상에 진입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구조하려 다가가자 장씨는 완강히 거부했고 어린 딸의 몸도 심하게 흔들렸다. 20여분 간 인질극 끝에 경찰은 장씨를 제압했다. 딸도 무릎에 찰과상을 입었을 뿐 무사히 구조됐다.
조사 결과 택배일을 하는 장씨는 2011년 11월 결혼한 전 부인 어모(44)씨와 신혼 때부터 자주 다퉜다. 원인은 다름 아닌 장씨가 결혼 3년 전부터 키우던 애완견 두 마리.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던 어씨는 “재채기가 자꾸 난다”며 애완견과의 동거를 반대했다. 반면 장씨는 “가족 같은 아이들”이라며 계속 기르기를 고집했다.
애완견을 두고 벌어진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갔다. 여기에 경제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두 사람은 2014년 1월 별거에 들어갔다. 당시 출산을 앞뒀던 어씨는 “곧 태어날 딸까지 이런 환경에서 키울 순 없다”며 친정으로 향했고 이들은 결국 올해 1월 이혼했다. 이후 딸이 계속 눈에 밟혔던 장씨는 이날 전 부인을 찾아가 “딸을 보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어씨는 장씨가 지난해에도 재결합을 요구하며 투신소동을 벌인 적이 있는 터라 처음에는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채 “멀리서 얼굴만 보고 가겠다”는 전 남편의 읍소에 현관 문을 열어줬다. 순간 그는 아이를 낚아 채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자살 인질극을 벌였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25일 인질강요 혐의로 장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내는 피의자가 애완견을 계속 키워 재결합을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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