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합시다.”
세상살이에서 당연지사인 이 말을 듣고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말을 내뱉는 발화자의 상황 때문인 듯 합니다.
상대방과 의견이 충돌할 때 내세우는 주장의 논리가 취약할수록, 전략적 대안이랄 게 없을수록, 아니면 얼굴이 더 두꺼울수록 적잖이 흥분하며 이 말을 입에 담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곤 합니다.
최근 양대 공영방송인 KBS와 MBC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 가운데 하나가 ‘법적 대응’입니다. 지난 20일 KBS전국기자협회가 “사드 배치 반대 시위와 관련해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리포트를 만들라는 ‘윗선’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며 낸 비판 성명이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후 KBS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기자협회의 성명서를 인용하는 모든 기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한마디로 ‘상대편 말 한마디라도 들어주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윽박이었습니다.
언론사라는, 그것도 공적 자금을 기반으로 운영돼 외부의 견제와 감시가 본연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공영방송의 공식적인 입장이란 사실에 기가 막힙니다.
지난 18일에도 KBS 보도국장을 비롯한 보도본부 국부장단 31명은 “진보좌파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수별 성명을 활용해 KBS뉴스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정현 녹취록’에 대한 침묵보도와 이를 비판한 기자의 부당인사 논란에 따른 KBS 내부 반발을 보도한 외부 매체를 ‘진보좌파’라 구분 지어 매도하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황당한 엄포성 메시지는 MBC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MBC는 지난 21일 도건협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 지부장이 “서울 보도국으로부터 성주군민의 폭력성을 앞세운 리포트를 제작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주장을 하자 이를 보도한 언론매체를 겨냥해 “허위사실 보도에 대해 강력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MBC는 이외에도 외부 시민사회단체나 언론노조 MBC본부 등이 제기하는 주장을 반박하는 보도자료에 “강력 대응”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책임 물을 것”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 등의 메시지를 빼놓지 않고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 정도 법적 대응 운운이면 ‘습관성 협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최근 ‘사드 보도지침’ 및 ‘부당인사’ 논란 등은 모두 공영방송 내부 종사자들의 폭로 혹은 비판으로 불거진 사안입니다. 이를 보도한 외부 매체에 이 정도로 윽박을 지를 정도면 과연 내부 인사에 대한 보복의 수준과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어떨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참에 법을 좋아하는 두 공영방송에 묻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해 간섭할 수 없다’는 방송법 제4조, ‘정부 정책과 다른 의견에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제6조를 과연 제대로 실천했는지를요.
KBS와 MBC, 제발 법대로 제대로 합시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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