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 참석 북중 외교수장, 같은 항공기서 환담하고 같은 호텔에 머물러
北中 외교장관회담 2년만에 성사될 듯
북한의 외교수장을 맡은 후 국제 무대에 처음 나선 북한 리용호(60) 외무상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24일(현지시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리는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 리 외무상과 왕 부장은 이번 회의 기간 머무는 숙소도 같다.
한미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과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을 두고 미중간 격돌이 예상되는 ARF에서 중국과 북한이 밀착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리 외무상과 왕 부장은 이날 중국 베이징을 출발해 쿤밍을 경유한 동방항공 항공편으로 오후 2시40분께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먼저 비행기에서 내린 왕 부장은 북한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가 통지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즉답을 피했다. 같은 비행기 안에서 리 외무상을 만났느냐는 물음에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며 환담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왕 부장에 이어 비행기에서 내린 리 외무상은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공항의 대기 차량에 오르기 직전 북중 회담 여부에 대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회색 양복 차림에 흰 와이셔츠, 격자무늬 금색 넥타이 차림을 한 리 외무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리 외무상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대표단이 아세안 관련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23일 평양을 출발했다고 밝혀, 리 외무상은 중국에서 하루 머문 뒤 왕 부장과 같은 비행기를 탄 것으로 보인다.
리 외무상과 왕 부장이 묵는 숙소는 메콩강 인근 돈 찬 팰리스 호텔로 두 나라 외에도 방글라데시, 몽골, 미얀마, 파키스탄, 캄보디아, 스리랑카 등 10개국 대표단이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외교 수장이 북중 접촉을 부인하지 않음에 따라 이 호텔에서 2년만에 북중 외교장관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두 외교 수장이 같은 비행기와 호텔을 잡은 데 대해 한미의 사드 배치에 맞서 북중 관계 개선의 신호를 주변국에 보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중국에서 라오스로 가는 비행기 편수가 많지 않고, 호텔도 적기 때문에 우연히 동승동박한 일로 크게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비엔티안=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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