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야한 동영상)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방송을 직접 만든 책임 프로듀서의 입에서 그토록 저질스럽고 책임감 없는 말이 나왔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초 방송된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을 연출했던 한동철 Mnet 국장의 발언을 읽고 또 읽으며 일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는 그 동안 남자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야동을 봐 왔던 것 인가.’
한 국장은 최근 잡지 하이컷과의 인터뷰에서 ‘프로듀스101’을 제작한 배경에 대해 “(‘프로듀스101’) 출연자들을 보면 내 여동생 같고 조카 같아도 귀엽잖아? 그런 종류의 야동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을 앞둔 남자판 ‘프로듀스101’이 남성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변이었는데요. 그러면서 그는 “남자판은 반대로 여자들에게 야동을 만들어주는 거다. 예전에는 비의 무대 영상이 여자들에게 야동이었다고 한다. 그런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게 남자판 ‘프로듀스(101)’”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성년자들이 대거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야동에 빗댄 한 국장의 인터뷰에 비난이 빗발치자 그는 결국 고개를 숙였습니다. 22일 한 국장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콘텐츠라는 표현을 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가 본래의 의도와 무관하게 큰 오해가 생겨 당황스럽고 죄송하다”며 “프로그램이 주는 재미와 활력이라는 상징성을 부적절한 단어 선택으로 오해를 야기했다”고 사과의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그는 “더 신중하게 발언하지 못 한 점 등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나온 참가자들을 졸지에 야동 출연자로 만들었다” “참가자들뿐 아니라 이들을 응원한 시청자들까지 모독한 발언” 등의 발언을 쏟으며 여전히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한 국장의 발언은 방송 제작자들이 가진 걸그룹(혹은 걸그룹 지망생)에 대한 평소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고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선정성 논란을 일으켰던 ‘프로듀스 101’의 연출자가 결국 저속한 단어로 방송의 선정성을 자인한 꼴이라 더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최근 걸그룹 멤버들을 성적 대상화한 예능 프로그램이 잇달아 방송됐습니다.
지난달 방송 2회 만에 폐지된 JTBC ‘잘 먹는 소녀들’은 남성 패널들이 둘러싼 가운데 걸그룹 멤버들이 음식 먹기 대결을 해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걸그룹 멤버들이 섹시한 표정을 지으며 음식을 먹고 이들이 고기 등을 입에 넣는 장면을 클로즈업해 방송하는 것을 두고 ‘푸드 포르노’란 노골적인 비판도 쏟아졌습니다.
바닥에 설치된 체중계로 걸그룹 멤버들의 몸무게를 몰래 측정하고 영하의 날씨에 섹시댄스를 추게 하면서 “아이돌의 본분은 어느 순간에도 예쁜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등 수준 이하의 방송을 내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로부터 법정제재를 받았던 KBS2 ‘본분 금메달’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당시 방통심의위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꽤 점잖은 표현을 쓰며 주의를 줬지만 시청률을 위해 여성을 상품화하고 방송사가 여성 출연자에 대놓고 ‘갑질’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지켜봐야 할까요? 걸그룹 멤버들을 마치 관음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프로그램과 이를 만드는 제작진의 ‘무지’ 혹은 ‘무식’을 어디까지 지켜만 봐야 할까요?
걸그룹 멤버들이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가진 끼와 재능을 펼치는 모습을 두고 누군가는 야동 속 주인공을 떠올리는 현실이 너무 부조리하기만 합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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